칼럼

가정적 소멸시효 항변도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

핵심 결론 피고가 “원고 청구가 불법행위라면 이미 시효가 완성됐다”고 가정적으로 주장하고 원고도 이에 재항변했다면 소멸시효 항변이 제출된 것이다. 공동불법행위자 한 명에 대한 소송이나 채무승인은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에게 효력이 없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7다865, 2000다70804, 2010다91886

해당 판례

대법원 2017. 9. 12. 선고 2017다865 판결 [부당이득금반환등]
  • 원고: 중정종합건설 주식회사
  • 피고: 공사도급약정서에 계약보증인으로 서명·날인하고 공사 수주 대가의 지급에 관여한 사람
  • 공동불법행위자: 시행업자로 행세하며 원고로부터 100,000,000원을 지급받은 사람
  • 쟁점: 피고의 가정적 주장을 소멸시효 항변으로 볼 수 있는지 및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종전 소송이 피고에게도 시효중단의 효력을 미치는지
  • 대법원 결과: 원심판결 파기·환송
하급심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6. 11. 29. 선고 2015나10716 판결
원심은 피고가 공동불법행위자와 함께 원고를 기망하여 100,000,000원을 지급하게 했거나, 적어도 과실로 공동불법행위자의 기망행위를 방조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의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피고가 준비서면에서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의 3년 단기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주장한 부분과 이에 대한 원고의 재항변을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
대법원은 피고가 원고의 청구원인이 불법행위라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가정적으로 주장했고, 원고도 이를 소멸시효 항변으로 이해하여 재항변했으므로 적법한 소멸시효 항변이 제출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공동불법행위자들이 부담하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는 한 채무자에 대한 재판상 청구나 채무승인이 다른 채무자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원고가 다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받은 판결만으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당연히 배척된다고 볼 수 없었다.
대법원은 피고의 공동불법행위책임 자체에 관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지만,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을 누락한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99. 7. 27. 선고 98다46167 판결 주요사실에 관한 주장은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주장한 경우뿐 아니라 전체 변론의 내용과 취지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도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2001. 2. 23. 선고 2000다70804 판결 당사자의 주장이 명확한 형식으로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변론 전체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주요사실에 관한 주장이 제출되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 대법원 1997. 9. 12. 선고 95다42027 판결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한 사람에게 발생한 소멸시효 중단사유는 다른 채무자에게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0다91886 판결 부진정연대채무자 한 사람의 채무승인이나 시효이익 포기는 다른 채무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법리를 확인하였다.

관련 법령

  • 민사소송법 제203조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 판결하지 못하며, 당사자가 제출한 청구와 주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처분권주의를 규정한다.
  • 민사소송법 제423조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 위반을 상고이유로 규정한다.
  • 민법 제168조 청구, 압류·가압류·가처분 및 승인을 소멸시효 중단사유로 규정한다.
  • 민법 제184조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하지만 시효 완성 후에는 포기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 민법 제413조 여러 채무자가 채무 전부를 각자 이행할 의무가 있고 한 사람의 이행으로 다른 채무자도 채무를 면하는 연대채무의 기본구조를 규정한다.
  • 민법 제416조 어느 연대채무자에 대한 이행청구가 다른 연대채무자에게도 효력이 미치는 절대적 효력사유임을 규정한다.

사실관계

원고는 서울 서대문구 일대에서 추진되던 주거환경개선사업의 공사를 수주하려고 하였다.
피고는 주민대표 및 시행업자인 공동불법행위자와 사업 진행에 관하여 긴밀하게 논의해 온 사람으로서 원고가 실제로 해당 공사를 수주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피고는 2005년 7월 6일 원고에게 공사도급을 확약하는 내용의 공사도급약정서를 교부하였다. 피고는 주민대표 명의로 작성된 약정서의 계약보증인란에 서명·날인하였다.
피고는 이후 공동불법행위자 명의의 차용증 작성에도 관여하면서 원고에게 공사 수주 대가의 지급을 요구하였다.
원고는 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고 믿고 공동불법행위자에게 합계 100,000,000원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원고가 공사를 수주할 가능성은 없었고, 공사도급약정서도 주민대표 명의로 위조된 것이었다.
원고는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별도의 대여금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았다. 이후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면서 청구가 다음과 같은 성격을 모두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 차용금반환청구
  • 부당이득반환청구
소멸시효 항변의 제출 경위
피고는 원심 제4차 변론기일에서 2016년 9월 20일자 준비서면을 진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주장하였다.
원고의 주장대로 피고가 원고를 기망하여 돈을 편취했다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원고가 불법행위를 안 2006년경부터 3년이 지난 2009년경에는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고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이와 함께 원고가 주장하는 청구원인이 불법행위인지, 대여금인지, 부당이득인지 명확히 밝히도록 법원에 석명을 요청하였다.
재판장은 원고에게 청구원인을 명확히 밝히도록 석명을 명하였다.
원고는 2016년 10월 13일자 준비서면에서 피고에 대한 청구가 불법행위 손해배상, 차용금반환 및 부당이득반환의 성격을 모두 가진다고 답변하였다.
아울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받은 종전 대여금 판결을 제시함으로써 배척될 수 있다고 재항변하였다.

법리

소멸시효는 당사자가 원용해야 법원이 판단할 수 있음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적용할 수는 없다. 시효의 이익을 받는 당사자가 소멸시효 완성 사실을 항변해야 한다.
다만 항변을 반드시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한다”는 형식적 문구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의 준비서면과 변론 전체를 보아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 취지가 드러나고 상대방도 이를 시효항변으로 이해하여 방어했다면 소멸시효 항변이 제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가정적 항변도 적법한 항변임
피고는 원고의 청구원인이 불법행위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라면 이미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원고의 청구원인이 불법행위로 확정되는 것을 조건으로 한 가정적 항변이다.
민사소송에서는 주위적·예비적 주장뿐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에 대비한 가정적 공격·방어방법도 허용된다. 따라서 피고가 청구원인을 다투면서 동시에 불법행위라면 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대방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임
특정 진술을 소멸시효 항변으로 볼 수 있는지는 그 문구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 준비서면에 기재된 구체적인 내용
  • 해당 주장이 이루어진 소송 경위
  • 재판장의 석명 내용
  • 상대방이 그 주장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 상대방이 소멸시효 중단이나 완성 저지에 관한 재항변을 했는지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의 주장을 명백히 소멸시효 항변으로 이해하고,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판결을 근거로 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재항변하였다.
따라서 피고의 표현이 다소 가정적이더라도 소멸시효 항변이 제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법원은 제출된 시효항변을 반드시 판단해야 함
원심은 피고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소멸시효 항변과 원고의 재항변에 관하여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소멸시효 항변이 받아들여지면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원고의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판결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방어방법이다.
법원이 이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은 것은 판단누락에 해당한다.
공동불법행위자들의 채무는 부진정연대채무임
공동불법행위자들은 피해자에게 발생한 동일한 손해 전부를 각자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
그러나 공동불법행위자들 사이에 당초부터 하나의 공동목적에 따른 주관적인 연대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불법행위에 기초한 독립적인 손해배상채무가 우연히 동일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중첩된다.
이러한 채무를 부진정연대채무라고 한다.
한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시효중단은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않음
부진정연대채무에서는 변제처럼 피해자의 손해를 실제로 소멸시키는 사유만 다른 채무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다음과 같은 사유는 해당 채무자에게만 상대적으로 효력이 있다.
  • 특정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재판상 청구
  • 특정 공동불법행위자의 채무승인
  • 특정 공동불법행위자의 시효이익 포기
따라서 원고가 공동불법행위자 중 한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았더라도 그 소송으로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되지는 않는다.
민법 제416조가 연대채무자 한 사람에 대한 이행청구의 효력을 다른 연대채무자에게도 미치도록 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절대적 효력은 부진정연대채무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의 채무승인도 피고에게 효력이 없음
공동불법행위자가 차용증을 작성하거나 채무를 인정했더라도 그 행위는 해당 공동불법행위자 자신의 채무에 관한 승인일 뿐이다.
특별한 대리관계 등이 없는 한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인 피고의 채무까지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의 차용증이나 종전 판결만으로 피고에 대한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결론

피고는 공사도급약정서에 계약보증인으로 서명·날인하고 공동불법행위자의 기망행위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의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원심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 자체는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의 청구원인이 불법행위라면 원고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때부터 3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가정적으로 항변하였다. 원고도 이를 소멸시효 항변으로 이해하여 재항변하였다.
따라서 원심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이유 있는지 판단했어야 한다.
원고가 다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았더라도 공동불법행위자들의 채무는 부진정연대채무이므로 그 재판상 청구의 시효중단 효력이 피고에게 미치지 않는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항변에 대한 판단을 누락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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