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 경력 불고지와 혼인취소

핵심 결론 성폭력 피해로 출산했지만 자녀와 오랫동안 단절된 경우 그 사실은 사생활의 본질적 영역이다.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기혼인이라 단정할 수 없고, 고지의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해야 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5므654, 2015므26

해당 판례

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므654, 661 판결 [혼인의무효등·이혼]
  • 원고(반소피고): 국제결혼을 한 대한민국 남성
  • 피고(반소원고): 베트남 국적의 여성
  • 원고의 본소: 출산 경력을 고지하지 않은 사기를 이유로 한 혼인취소 및 위자료 청구, 예비적으로 이혼 청구
  • 피고의 반소: 원고의 귀책사유를 이유로 한 이혼 및 위자료 청구
  • 대법원 결과: 피고 패소 부분 파기·환송
하급심
제1심
제1심은 피고가 혼인 전에 출산한 사실을 원고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민법 제816조 제3호의 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혼인취소청구를 인용하였다.
또한 피고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하고, 피고가 반소로 청구한 이혼 및 위자료 청구는 기각하였다.
원심
원심은 출산 경력이 혼인의사를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므로 피고와 국제결혼중개업자에게 이를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은 피고가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원고가 이를 알았더라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아 혼인취소를 인정하였다.
다만 피고가 적극적인 허위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위자료를 3,000,000원으로 정하였다.
혼인취소청구가 인용됨에 따라 혼인이 유효하게 존속함을 전제로 한 피고의 반소 이혼 및 위자료 청구는 모두 기각하였다.
대법원
대법원은 출산 경력이 혼인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출산 경력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고지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피고가 주장한 것처럼 아동성폭력범죄의 피해로 임신·출산하였고, 출산 후 자녀와 단절되어 8년간 양육이나 교류가 전혀 없었다면 그 출산 경력과 경위는 명예와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에게 그 사실을 고지하도록 기대할 수 있는지, 고지하지 않은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상 비난받을 정도인지 충분히 심리하지 않고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하였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84. 9. 25. 선고 84므77 판결 혼인취소 사유인 사기가 성립하려면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고, 그 기망으로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대한 착오가 발생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므1329 판결 혼인 전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기혼인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그 사실의 성질과 혼인의사 결정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 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5므26 판결 혼인과 가족관계는 일반적인 재산상 법률관계와 다르므로 혼인의 무효·취소사유를 판단할 때 혼인의 실질과 당사자의 인격적 이익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를 확인하였다.

관련 법령

  • 민법 제815조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 등 법률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혼인은 무효가 된다.
  • 민법 제816조 제3호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혼인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 민법 제824조 혼인의 취소의 효력은 기왕에 소급하지 아니한다.
  • 민법 제825조 혼인의 취소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에는 약혼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에 관한 민법 제806조를 준용한다.
  • 민법 제806조 약혼해제에 과실이 있는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재산상·정신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 민법 제840조 배우자의 부정행위, 악의의 유기, 배우자 또는 직계존속의 심히 부당한 대우 등 재판상 이혼사유를 규정한다.
  •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 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 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사실관계

원고는 국제결혼중개업자의 소개로 베트남 국적의 피고를 만나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2012년 4월 9일 대한민국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피고는 혼인 전에 베트남에서 아들을 출산한 사실이 있었으나, 피고와 현지 결혼중개업자는 원고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혼인 과정에서 원고에게 전달된 서류에는 피고의 현재 혼인상태가 독신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지만 출산 경력은 표시되지 않았다.
피고는 2012년 7월 28일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원고와 원고의 어머니 및 계부와 함께 생활하였다.
혼인생활 중 원고의 계부가 피고를 강간하고 강제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원고의 계부는 성폭력범죄로 기소되어 징역 7년의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판결은 확정되었다.
원고는 계부의 형사사건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13년 8월경 피고가 혼인 전에 자녀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고는 2013년 8월 28일 피고의 출산 경력 불고지가 사기에 해당한다며 혼인취소 및 위자료를 구하는 본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반소로 이혼과 위자료를 청구하였다. 피고는 원고의 계부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원고가 배우자로서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고, 형사재판 과정에서도 자신과의 신뢰를 저버려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는 과거 출산 경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 피고가 만 13세 무렵인 2003년 10월경 타이족 남성에게 납치되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임신하였다.
  • 가해 남성의 폭력 때문에 2004년 6월경 친정으로 피신하였다.
  • 피고는 2004년 8월경 아들을 출산했지만 가해 남성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
  • 그 후 약 8년 동안 자녀를 양육하거나 교류한 사실이 없었다.
제1심과 원심은 이러한 출산 경위에도 불구하고 출산 경력 자체가 혼인의사 결정에 중요한 사항이므로 피고에게 고지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법리

혼인취소에서 말하는 사기에는 침묵도 포함될 수 있음
민법 제816조 제3호의 사기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거나 침묵한 경우도 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불고지나 침묵이 위법한 기망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고지를 사기로 평가하려면 법령, 계약, 관습 또는 조리상 그 사실을 혼인 전에 고지할 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다음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혼인 당사자 또는 제3자에게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위법한 기망행위가 있을 것
  • 상대방이 혼인의사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하여 착오에 빠졌을 것
  • 그 기망행위가 없었더라면 사회통념상 혼인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될 것
고지의무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음
혼인 전에 특정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는지는 그 사실이 혼인의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대법원은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 당사자들의 연령과 초혼 여부
  • 혼인에 이르게 된 과정
  • 혼인 전 형성된 생활관계와 신뢰의 정도
  • 해당 사실이 혼인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
  • 해당 사실이 부부간 애정과 신뢰 형성에 불가결한 사항인지
  • 해당 사실이 당사자의 명예와 사생활의 비밀에 속하는지
  • 상대방이 해당 사실에 관하여 질문한 적이 있는지
  •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거짓말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말하지 않은 것인지
  • 혼인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
  • 국제결혼인 경우 언어·문화·혼인 관습의 차이
혼인 상대방의 의사결정 자유만 보호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도 함께 보호해야 한다.
출산 경력이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고지의무가 발생하지 않음
출산 경력은 경우에 따라 상대방의 혼인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출산 사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상대방에게 알릴 법적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사정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 출산에 이르게 된 경위
  • 출산한 자녀의 생존 여부
  • 현재 양육·부양책임이 존재하는지
  • 실제 양육이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 향후 자녀를 양육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 출산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거나 허위로 진술했는지
  • 출산 경력의 공개가 당사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지
  • 사회통념상 그 사실을 고지하도록 기대할 수 있는지
  • 불고지가 신의성실의 원칙상 비난받을 정도인지
따라서 혼인 상대방이 “알았더라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가 인정되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에 따른 출산은 사생활의 본질적 영역임
당사자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성폭력범죄의 피해를 당하여 임신·출산했고, 이후 자녀와 장기간 단절되어 양육이나 교류가 없었다면 그 출산 경력과 경위는 개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 속한다.
그 사실을 혼인 상대방에게 밝히는 것은 단순히 출산 사실만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아동기의 성폭력 피해까지 공개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명예, 사생활의 비밀 및 인간의 존엄을 고려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실의 고지를 기대할 수 있는지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은 그러한 사정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상 비난받을 만한 기망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국제결혼이라고 하여 고지의무가 더 넓어지는 것은 아님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혼인이라 하더라도 혼인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권 보호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결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과거사 전부를 공개해야 하는 포괄적인 고지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화와 언어, 혼인 관습의 차이 및 당사자 사이의 의사소통 과정까지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은 경우의 판단 기준은 국내 혼인과 국제결혼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혼인취소는 일반 계약의 취소보다 신중하게 인정해야 함
혼인은 단순한 재산상 계약과 달리 신분관계와 공동생활을 형성하는 법률관계이다.
혼인이 취소되더라도 이미 이루어진 공동생활과 신분관계를 혼인 전 상태로 완전히 돌릴 수 없다. 민법도 혼인취소의 효력이 과거로 소급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혼인취소는 혼인 당시의 사유를 이유로 이미 성립한 혼인의 효력을 상실시킬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해야 한다.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것과 혼인 당시부터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 사유가 있었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재판상 이혼의 문제이고, 후자는 혼인의 성립 과정에서 위법한 기망이 있었는지의 문제이다.

결론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은 행위도 고지의무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출산 사실이 혼인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우에 고지의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피고가 주장한 것처럼 아동성폭력범죄로 임신·출산했고, 자녀와 8년 동안 단절되어 양육·교류가 전혀 없었다면 그 출산 경력과 경위는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영역에 해당한다.
원심은 출산 경위, 자녀와의 관계, 원고의 질문 여부, 국제결혼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과정 및 피고에게 고지를 기대할 수 있었는지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출산 경력 불고지를 사기로 단정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이 혼인취소의 요건과 고지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아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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