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금질권 설정을 승낙한 은행의 상계권 행사

핵심 결론 은행이 예금질권을 승낙하면서 기존 대출채권과의 상계권을 명시적으로 유보했다면, 질권자는 그 제한을 감수한다. 담보용 예금임을 은행이 알았다는 사정만으로 상계가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2다79750, 2003다28, 2003다7623

해당 판례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2다79750 판결 [전부금]
  • 원고: 채무회사의 정기예금채권에 질권을 설정받은 신주인수권부사채권자들
  • 피고: 예금채무자인 동시에 채무회사에 대한 대출채권자인 은행
  • 결과: 원심판결 파기·환송
하급심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2. 8. 17. 선고 2012나1186 판결
원심은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 기재된 상계권 유보조항 자체의 효력은 인정하였다.
다만 다음 사정을 근거로 피고 은행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 정기예금계좌가 원고들의 사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 질권설정이 없었다면 해당 예금채권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은행도 예금계좌의 개설 목적과 질권설정의 취지를 알고 있었다.
  • 은행의 대출채권은 예금계좌가 개설되기 전에 이미 발생한 신용대출채권이었다.
  • 상계권 유보조항은 은행의 정형화된 서식에 인쇄된 문구였다.
  • 은행이 원고들에게 상계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 원고들이 상계 가능성을 알았다면 다른 은행의 예금채권을 담보로 요구했을 것이다.
이에 원심은 은행의 상계권 행사를 부정하고 질권자들의 전부금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대법원은 위 사정만으로 은행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는 은행의 기존 채권에 의한 상계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고, 질권설정자와 질권자들이 그 아래에 기명날인하였다. 따라서 해당 조항은 단순한 예문이 아니라 은행이 상계권을 유보한 실질적인 의사표시였다.
은행이 담보 목적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상계권을 포기하거나 질권자의 이익을 우선하여 보호하기로 약정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판결 전문

관련 판례

대법원 2005. 9. 9. 선고 2003다28 판결
금융기관은 예금채권자에 대한 반대채권으로 예금채무와 상계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
금융기관의 상계권 행사가 권리남용이나 신의칙 위반이 되려면, 금융기관이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면서까지 상대방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는데도 이에 반하여 상계권을 행사하는 등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3다7623 판결
은행과 고객 사이에 신용악화나 압류 등의 사유가 발생하면 대출채무의 기한의 이익을 상실시키기로 하는 특약이 있다면 그 특약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그 특약에 따라 대출채권과 예금채권이 압류 전에 상계적상에 이르렀다면, 제3채무자인 은행은 압류채권자에게 상계로 대항할 수 있다.

관련 법령

민법 제2조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고,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상계권도 권리남용이나 신의칙의 제한을 받을 수 있지만, 정당한 상계권의 행사를 부정하려면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

민법 제349조

지명채권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은 질권설정자가 제3채무자에게 질권설정 사실을 통지하거나 제3채무자가 이를 승낙하여야 제3채무자와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민법 제349조 제2항은 민법 제451조의 규정을 준용한다.

민법 제451조 제1항

제3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채권양도를 승낙한 경우에는 양도인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사유로 양수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이 규정은 지명채권 질권에도 준용된다. 따라서 은행이 아무런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예금질권 설정을 승낙하면, 승낙 당시 예금주에게 가지고 있던 대출채권에 의한 상계로 질권자에게 대항하기 어렵다.
반대로 은행이 승낙할 때 기존 대출채권에 의한 상계권을 명시적으로 유보하면 그 범위에서 질권자에게 상계로 대항할 수 있다.

민법 제492조

서로 같은 종류의 채무를 부담하고 양쪽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경우에는 각 채무자는 대등액에서 상계할 수 있다.
다만 채무의 성질이 상계를 허용하지 않거나 당사자가 상계를 금지하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상계할 수 없다.

사실관계

채무회사는 2009년 4월 1일 피고 은행과 1,500,000,000원을 대출받는 여신거래약정을 체결하였다. 당초 변제기는 2010년 4월 1일이었으나 이후 2011년 4월 1일로 연장되었다.
여신거래약정에 편입된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에는 다음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 휴업, 관련 기업의 도산 및 회사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법적 분쟁 등으로 채무자의 신용이 현저히 악화되면 은행이 채무이행 등을 독촉할 수 있다.
  •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채무자는 기한의 이익을 상실한다.
  • 대출채무의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면 은행은 예금채권의 만기 도래 여부와 관계없이 대출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
원고들은 2010년 9월 30일 채무회사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각각 매수하였다. 각 사채의 발행가액은 1,000,000,000원, 만기일은 2013년 9월 30일이었다.
채무회사는 2010년 10월 4일 피고 은행에 각각 300,000,000원씩 합계 600,000,000원의 정기예금계좌 2개를 개설하였다. 이어 원고들의 사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각 예금채권에 원고들을 질권자로 하는 질권을 설정하였다.
채무회사와 원고들은 피고 은행에 질권설정승낙의뢰서를 제출하였다. 피고 은행도 예금질권 설정을 승낙하였다.
다만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는 다음 취지의 상계권 유보조항이 인쇄되어 있었다.
질권설정 승낙일 이전에 질권설정자가 은행에 부담하는 채무가 있는 경우에는 은행거래약정서 또는 차용금증서 등의 상계예약조항에 따라 은행이 상계권을 행사하여도 이의가 없다.
채무회사와 원고들은 이 조항 아래에 각각 기명날인하였다.
그 후 2011년 3월 28일 채무회사에 관하여 다음 사항이 공시되었다.
  • 주권매매거래 정지
  • 상장폐지 사유 발생
  •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
  • 경영상 중대한 신용악화 사정
피고 은행은 채무회사가 여신거래약관상 기한의 이익 상실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은 2011년 3월 29일 채무회사에 기한의 이익 상실 통지를 하고, 2011년 4월 13일 채무회사와 원고들에게 상계예정통지를 한 다음 2011년 4월 20일 대출금채권과 각 예금채권을 상계하였다.
한편 원고 1은 2011년 4월 6일 제1 예금채권에 관하여 질권 실행을 위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은 2011년 4월 11일 피고 은행에 송달되었다.
원고 2 회사도 제2 예금채권에 관하여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았으나, 그 명령은 은행의 상계일 이후인 2011년 4월 22일 피고 은행에 송달되었다.
원고들은 예금채권이 자신들의 사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개설된 것이므로 은행이 이를 기존 대출채권과 상계한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전부금 지급을 청구하였다.

법리

은행의 예금채권에 대한 상계권은 원칙적으로 보호된다
은행은 고객에게 예금반환채무를 부담하는 동시에 고객에 대하여 대출금채권을 보유할 수 있다.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이르면 은행은 대출금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고 예금반환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할 수 있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이라는 계속적인 거래관계를 전제로 채무자의 신용이 악화되면 예금채권과 상계하여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기대를 가진다.
따라서 상계권 행사를 신의칙 위반이나 권리남용으로 부정하려면 단순히 그 결과가 질권자에게 불리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질권설정 승낙 시 이의를 보류하지 않으면 상계로 대항할 수 없다
은행이 예금질권 설정을 아무런 이의 없이 승낙하면 민법 제349조 제2항과 제451조 제1항이 적용된다.
따라서 은행이 승낙 당시 예금주에 대한 대출채권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원칙적으로 그 대출채권과의 상계로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이러한 결과를 피하려면 은행은 질권설정을 승낙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의를 보류하여야 한다.
  • 은행이 예금주에 대해 보유한 기존 채권을 명시한다.
  • 여신거래약정 등에 따른 상계권을 유보한다.
  • 질권자에게 상계권이 질권보다 우선하여 행사될 수 있음을 알린다.
이 사건에서 은행은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 기존 대출채권에 의한 상계권을 유보하는 문구를 명시하였다. 질권자들도 그 문구가 기재된 서류에 기명날인하였다.
따라서 은행의 승낙은 ‘이의를 보류하지 않은 승낙’이 아니라 ‘상계권을 유보한 승낙’에 해당한다.
인쇄된 조항이라는 이유만으로 예문이 되지는 않는다
원심은 상계권 유보조항이 은행의 정형화된 서식에 미리 인쇄되어 있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인쇄된 문구라는 이유만으로 실질적 의미가 없는 단순한 예문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조항의 내용이 기존 대출채권과 예금채권의 상계를 구체적으로 예정하고 있었다.
  • 질권설정자뿐 아니라 질권자들도 해당 조항 아래에 기명날인하였다.
  • 은행은 질권설정을 승낙하면서 상계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였다.
  • 질권자들은 상계권이 유보된 조건으로 질권설정 승낙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질권자들은 은행의 상계권 유보를 전제로 예금질권을 취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담보용 예금이라는 사정만으로 상계권이 제한되지 않는다
채무회사가 원고들의 사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예금계좌를 개설했고, 은행도 그 목적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채무회사와 원고들 사이에서 예금채권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는지에 관한 사정이다.
은행이 다음과 같은 별도의 의사표시나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담보 목적만으로 은행의 상계권을 제한할 수 없다.
  • 은행이 예금채권에 대한 상계권을 포기한 경우
  • 은행이 예금을 오로지 질권자의 담보로만 사용하기로 약정한 경우
  • 은행이 질권자에게 질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신뢰를 부여한 경우
  • 은행이 질권자의 담보 확보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특별한 의무를 부담한 경우
이 사건에서 은행은 오히려 상계권 유보조항을 명시했으므로 질권자에게 질권이 은행의 상계권보다 우선한다는 신뢰를 부여했다고 볼 수 없다.
신의칙 위반은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인정된다
금융기관의 상계권 행사를 신의칙 위반으로 제한하려면 금융기관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제한하면서까지 상대방이나 제3자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
다음 사정만으로는 그러한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 예금이 제3자의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개설되었다는 사정
  • 은행이 예금의 담보 목적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
  • 은행의 대출채권이 예금 개설 전에 이미 발생했다는 사정
  • 대출이 담보대출이 아니라 신용대출이었다는 사정
  • 질권자가 상계 가능성을 알았다면 다른 담보를 요구했을 것이라는 사정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은 질권설정자와 질권자의 목적 또는 기대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은행이 상계권을 포기하거나 질권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부담했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결론

피고 은행은 예금질권 설정을 승낙하면서 기존 대출채권에 의한 상계권을 명시적으로 유보하였고, 질권자들도 해당 조항이 기재된 질권설정승낙의뢰서에 기명날인하였다.
따라서 피고 은행은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질권설정을 승낙한 것이 아니며, 채무회사의 대출채무가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여 상계적상에 이른 후 예금채권과 상계할 수 있다.
예금이 원고들의 사채권 담보 목적으로 개설되었고 은행이 그 목적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은행이 상계권을 포기했거나 질권자의 이익을 우선하여 보호할 특별한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은행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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