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결
1. 사실관계
원고 회사는 건설공사를 수행하고 소외인에 대하여 공사대금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원고 회사의 대표이사였던 망인은 2006. 12. 22. 이사회결의 등 회사 내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소외인의 원고 회사에 대한 공사대금채무를 면제해 주었다.
채무면제 당시 원고 회사의 감사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러나 감사는 대표이사에게 채무면제행위의 유지를 청구하거나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에 보고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 후 원고 회사는 대표이사가 사망할 때까지 소외인에게 공사대금 지급을 청구하지 않았고, 2008년과 2009년 사업결산서의 미수금 명세서에도 해당 공사대금채권을 기재하지 않았다.
원고 회사는 이후 대표이사의 상속인 등을 상대로 무단 채무면제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피고들은 당시 감사가 채무면제행위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의 3년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여 이미 완성되었다고 항변하였다.
2.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 대표이사가 회사에 불법행위를 한 경우 누구의 인식을 기준으로 회사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을 판단할 것인지
-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를 알고도 이를 저지하지 않은 감사의 인식을 회사의 인식으로 볼 수 있는지
- 감사의 부작위가 대표이사와의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3. 원심의 판단
서울고등법원 2012. 2. 3. 선고 2011나73665 판결은 감사가 채무면제 당시 그 자리에 있었고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원심은 감사가 대표이사와 공동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없고, 감사는 회사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임원에 해당하므로 감사가 채무면제행위를 안 2006. 12. 22.부터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원심은 원고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권이 3년의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보아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제1심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가. 대표자 자신의 인식만으로는 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3년 단기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진행한다. 법인의 경우에는 통상 대표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때 법인도 이를 안 것으로 본다.
그러나 법인의 대표자가 법인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인과 대표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 가해자인 대표자가 회사를 위하여 자신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 청구에 관해서는 대표권도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해자인 대표자가 자신의 불법행위와 회사의 손해를 알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
나. 독립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보전할 수 있는 사람의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우에는 적어도 회사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다른 대표자, 임원 또는 사원이나 직원 등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손해와 가해자를 안 때부터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한다.
다만 손해와 가해자를 알고 있던 임직원이 가해 대표자와 공동불법행위 관계에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회사를 위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임직원의 인식도 소멸시효 기산점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다. 감사의 부작위도 공동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민법 제760조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들 사이의 공모나 공동인식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각 행위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있고 그 행위로 손해가 발생하면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공동불법행위의 방조에는 불법행위를 가능하게 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모든 직접·간접 행위가 포함된다. 작위의무가 있는 사람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불법행위를 가능하게 하거나 용이하게 한 경우와 과실에 의한 방조도 포함된다.
감사는 다음과 같은 권한과 의무를 가진다.
- 이사의 업무집행과 회계에 대한 감사
- 이사에 대한 영업보고 요구와 회사의 업무·재산상태 조사
-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이사의 행위에 대한 유지청구
- 이사회 및 임시주주총회의 소집
- 이사회에서의 의견 진술
- 이사의 위법행위를 발견한 경우 이사회에 보고할 의무
그런데 이 사건 감사는 대표이사의 무단 채무면제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도 이를 저지하거나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에 보고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러한 감사의 부작위가 고의에 의한 방조 또는 적어도 감사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에 의한 방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표이사의 채무면제행위와 감사의 방조행위는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회사의 공사대금채권 소멸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발생시켰으므로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라. 공동불법행위자인 감사의 인식은 시효 기산점이 될 수 없다
감사가 대표이사와 공동불법행위 관계에 있다면 감사가 대표이사의 행위를 알고 있었더라도 그 감사가 회사를 대표하여 대표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감사가 채무면제행위를 안 2006. 12. 22.을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다.
기록상 당시 원고 회사에는 대표이사인 망인 외에 다른 각자대표이사가 재임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그 각자대표이사가 공동불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 또는 회사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다른 임직원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불법행위를 안 때를 기준으로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결론
대법원은 감사가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를 안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본 원심이 공동불법행위와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판결의 의의
1. 법인의 인식을 형식적인 대표자의 인식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법인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은 통상 대표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그러나 대표자 자신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이 판결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람이 회사를 위하여 실제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지위에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보았다.
2. 가담 임직원의 인식을 배제하였다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를 알고 있던 감사나 다른 임원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불법행위에 가담하거나 방조하였다면 그 인식을 회사의 인식으로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소멸시효 항변을 판단할 때에는 다음 사항을 순차적으로 심리해야 한다.
- 손해와 가해자를 안 임직원이 누구인지
- 그 임직원에게 회사의 이익을 보전할 실질적인 권한이 있었는지
- 그 임직원이 가해 대표자의 불법행위에 가담하거나 방조했는지
- 가담하지 않은 다른 임직원이 언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알았는지
3. 감사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감사는 대표이사의 위법행위를 단순히 지켜보는 지위에 있지 않다.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사하고 위법행위를 저지·보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감사가 위법행위를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를 가능하게 하거나 용이하게 했다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질 수 있다.
관련판례
1. 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2다11441 판결
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2다11441 판결은 법인의 대표자가 법인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한 경우, 법인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다른 대표자나 임직원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때부터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판시하였다.
대표이사로부터 회사의 주식 전부와 경영권을 양수한 사람 및 새로운 경영진도 회사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사람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았다.
2012다20475 판결은 이 법리를 계승하면서, 손해를 알고 있던 임원이 가해 대표자와 공동불법행위 관계에 있다면 그 임원의 인식을 소멸시효 기산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2. 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6다78329 판결
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6다78329 판결은 공동불법행위의 성립에 행위자 사이의 공모나 공동인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각 행위가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되어 손해를 발생시키면 충분하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작위의무가 있는 사람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타인의 불법행위를 가능하게 하거나 용이하게 한 경우에는 부작위에 의한 방조가 성립할 수 있고,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관련법령
민법 제760조
민법 제760조는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연대하여 배상할 책임을 지고, 교사자와 방조자를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한다.
민법 제766조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상법 제391조의2
상법 제391조의2는 감사의 이사회 출석·의견진술권 및 이사의 법령·정관 위반행위에 대한 보고의무를 규정한다.
상법 제402조
상법 제402조는 이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여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 감사 또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주주가 그 행위의 유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상법 제412조
상법 제412조는 감사가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사하고, 언제든지 이사에게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회사의 업무와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상법 제412조의3은 감사의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권을, 상법 제412조의4는 감사의 이사회 소집청구권과 소집권을 규정한다.
최종정리
대표이사가 회사에 불법행위를 한 경우 가해 대표자나 그 불법행위에 가담·방조한 감사 또는 임원의 인식을 기준으로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 회사의 이익을 독립적이고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이 있는 다른 대표자나 임직원이 손해와 가해자를 알고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때부터 시효가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