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결
- 사건명: 손해배상
-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1. 10. 28. 선고 2010나118493 판결
- 결과: 원심판결 파기·환송
관련판례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90982 판결은 법인격 형해화 또는 남용을 이유로 배후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회사 간 재산·업무의 혼용, 의사결정절차 준수 여부, 자본의 충실도 및 지배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73400 판결은 기존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신설회사의 법인격을 내세워 기존 회사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06. 8. 25. 선고 2004다26119 판결은 모회사가 자회사의 전 주식을 보유하고 임원을 선임하는 등 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사정만으로 법인격 남용을 인정할 수 없고, 자회사가 독자성을 상실할 정도의 완전한 지배와 법인제도를 남용하려는 목적이 필요하다고 판시하였다.
관련법령
민법 제2조는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이 신의에 좇아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법인격부인론은 독립된 법인격을 내세우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고 정의와 형평에 현저히 반하는 경우 그 법인격의 주장을 제한하는 법리이다.
상법 제169조는 회사를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으로 규정한다. 회사는 원칙적으로 주주·임원 및 다른 회사와 구별되는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다.
사실관계
원고 회사는 2009년 6월경 피고 회사와 국도대체 우회도로 건설공사에 사용할 철근의 가공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가 철근을 공급하면 피고 회사가 이를 톤당 44,000원에 가공하여 원고에게 납품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2009. 6. 15.경부터 피고 회사의 음성지점 공장에 철근을 공급하였다.
피고 회사는 2009. 6. 18. 음성지점의 폐업신고를 하였고, 그 무렵 철근가공업을 중단하였다. 이후 별개의 회사가 같은 공장을 임차하여 철근가공업을 시작하였다. 원고는 같은 장소에 계속 철근을 공급하면서 새로 공장을 운영한 회사와 거래하였다.
새 회사는 2009년 7월경 원고에게 1,500t의 철근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철근보관증을 작성하였다. 철근이 손망실되거나 분실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한다는 이행각서도 교부하였다.
그러나 2009. 12. 7.경 확인 결과 다음과 같은 철근 부족이 발견되었다.
- 무단 반출된 철근 390.36t
- 기타 사유로 부족한 철근 60.317t
- 총 부족량 450.677t
새 회사는 철근 부족분을 변제하겠다고 통보하였으나 실제로 변제하지 않았다.
원고는 피고 회사와 새 회사가 실질적으로 동일하고, 새 회사는 피고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내세운 회사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원고는 새 회사의 철근 무단 반출에 따른 손해를 피고 회사에도 청구하였다.
원심 판단
원심은 다음 사정을 근거로 두 회사가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판단하였다.
- 피고 회사의 음성지점과 새 회사의 사업장 소재지가 동일하였다.
- 일부 임원의 명함에 기재된 본사 주소와 전화·팩스번호가 같았다.
- 피고 회사가 철근가공업을 중단한 직후 같은 장소에서 새 회사가 같은 사업을 시작하였다.
- 새 회사가 사업을 시작한 후에도 일부 거래명세표가 피고 회사 명의로 작성되었다.
- 피고 회사와 새 회사 사이에 일부 임원이 중복되었다.
- 두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자가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
-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기존 계약관계가 종료되었다고 명확하게 통보하지 않았다.
원심은 새 회사가 피고 회사의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별개의 법인 형식만 갖추어 설립된 회사라고 보았다.
따라서 피고 회사가 새 회사와 별개의 법인격을 주장하여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법인격 남용이라고 판단하고, 피고 회사에도 철근 부족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핵심쟁점
이 사건의 핵심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두 회사의 사업장·임원·경영자가 일부 동일하고 영업이 연속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법인격의 형해화 또는 남용을 인정할 수 있는가.
둘째, 법인격의 형해화 여부와 법인격 남용 여부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셋째, 새 회사가 부담하는 채무를 다른 회사에 귀속시키려면 두 회사 사이의 재산·업무 및 조직의 혼용이 어느 정도까지 증명되어야 하는가.
넷째, 새 회사 설립 전의 기존 채무가 아니라 새 회사가 거래를 시작한 이후 발생한 채무에 대해서도 ‘채무면탈 목적의 회사 설립’을 근거로 기존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대법원 판단
1. 법인격부인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회사는 설립등기를 마치면 주주나 대표자 및 다른 회사와 구별되는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다.
그러나 외형상 회사의 형식을 갖추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다른 회사의 도구에 불과하거나, 배후 회사에 대한 법률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사가 이용된 경우까지 독립된 법인격을 절대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 배후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내세워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고 정의와 형평에 현저히 어긋나므로, 해당 회사뿐 아니라 배후 회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만 법인격부인은 회사법상 법인격 독립의 원칙에 대한 예외이므로 엄격한 요건 아래 인정되어야 한다.
2. 법인격 형해화의 판단기준
해당 회사가 배후 회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법인격 형해화를 인정하려면, 문제 되는 법률행위나 사실행위가 이루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다음 사정을 종합해야 한다.
- 두 회사의 재산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 두 회사의 업무와 회계가 독립적으로 처리되었는지
- 각 회사가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 법정 의사결정절차를 거쳤는지
- 해당 회사의 자본이 현저하게 부실한지
- 독립적인 영업조직과 직원이 존재하는지
- 독자적인 사업목적과 영업활동이 있었는지
- 해당 회사가 이름뿐이고 배후 회사를 위한 영업부문에 지나지 않는지
단순히 사업장 소재지가 같거나 일부 임원이 중복된다는 사정만으로는 회사가 형해화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3. 법인격 남용의 판단기준
회사가 완전히 형해화되지 않았더라도 배후 회사가 그 법인격을 남용한 경우에는 배후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채무면탈 등 남용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다음 요건이 필요하다.
- 배후 회사가 해당 회사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을 것
- 배후 회사가 그 지위를 실제로 이용하였을 것
- 채무면탈이나 법률 적용 회피를 위해 회사제도를 남용하였을 것
- 법인격을 내세워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거래 상대방의 신뢰와 형평에 현저히 반할 것
법인격 남용 여부는 회사의 형해화 정도와 함께 거래 상대방이 누구를 거래당사자로 인식하고 신뢰하였는지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4. 이 사건 채무는 새 회사의 거래 이후 발생하였다
원심은 새 회사가 피고 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을 법인격 남용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사건 손해배상채무는 새 회사가 설립되거나 인수되기 전에 피고 회사가 부담하던 기존 채무가 아니었다.
철근 무단 반출은 새 회사가 원고와 거래하면서 철근보관증과 이행각서를 작성한 이후에 발생하였다. 원고 역시 피고 회사의 철근가공업 폐지와 새 회사의 공장 운영을 알고 새 회사에 계속 철근을 공급하였다.
따라서 새 회사의 행위로 새롭게 발생한 채무에 대해 단순히 ‘피고 회사의 기존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새 회사를 설립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5. 원심이 인정한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새 회사는 피고 회사가 새로 설립한 회사가 아니라 2003년 이미 설립되어 있던 별개의 회사를 인수하여 상호·본점과 사업목적을 변경한 회사였다.
새 회사는 공장을 별도로 임차하고 철근가공업을 실제로 수행하였다. 또한 새 회사 명의로 철근보관증과 이행각서를 작성하고 원고와 거래하였다.
일부 임원이 중복되고 같은 사람이 두 회사의 경영에 관여했다는 사정도 있었지만, 다음 사항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 두 회사의 주주 및 실질적인 경영지배 관계
- 두 회사의 자금과 재산이 혼용되었는지
- 새 회사가 독립된 자금으로 영업했는지
- 새 회사의 직원과 조직이 피고 회사와 분리되어 있었는지
- 철근 무단 반출로 조성된 자금이 피고 회사에 귀속되었는지
- 피고 회사가 새 회사를 이용하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는지
따라서 원심이 인정한 외형적 연관성만으로 새 회사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었거나 피고 회사가 법인격을 남용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6. 추가로 심리해야 할 사항
대법원은 원심이 다음 사항을 추가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 피고 회사가 음성지점을 폐쇄하고 새 회사가 거래를 인수한 경위
- 새 회사가 철근가공업을 시작한 구체적인 이유
- 피고 회사가 음성지점 폐쇄 후에도 철근가공 거래에 관여했는지
- 새 회사가 피고 회사와 경제적으로 독립된 상태에서 거래했는지
- 양 회사의 조직·직원·자금·재산이 구분 없이 사용되었는지
- 무단 반출된 철근의 처분대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 해당 자금이 피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대법원은 이러한 심리 없이 피고 회사에 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인격부인론에 관한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의 위법이 있다고 보아 파기·환송하였다.
결론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하여 한 회사의 채무를 다른 회사에 부담시키기 위해서는 사업장, 임원 또는 실질적 경영자가 일부 같다는 사정만으로 부족하다.
법인격 형해화를 인정하려면 문제 행위 당시 두 회사의 재산·업무·조직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용되어 해당 회사가 배후 회사를 위한 영업도구에 불과해야 한다.
법인격 남용을 인정하려면 배후 회사가 해당 회사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서 채무면탈이나 법률 적용 회피를 위해 회사제도를 실제로 남용해야 한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요건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법인격부인론을 ‘법인격 형해화’와 ‘법인격 남용’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판단요건과 기준시점을 구체화하였다.
특히 다음 사항을 분명히 하였다.
- 형해화 여부는 문제 된 법률행위 또는 사실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남용 여부는 채무면탈 등 법인제도를 남용한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같은 사업장, 동일·유사 영업, 일부 임원 중복 및 공통 경영자만으로는 부족하다.
- 재산·업무·회계·직원·조직의 실질적 혼용 여부가 중요하다.
- 기존 채무를 면탈한 사안과 새 회사의 독자적 거래에서 새로 발생한 채무를 구별해야 한다.
- 거래 상대방이 어느 회사를 계약당사자로 인식하고 거래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관련 회사나 신설회사를 상대로 책임을 확장하려면 양 회사의 외형적 연관성보다 자금흐름, 회계처리, 의사결정, 직원·재산의 혼용 및 채무면탈 목적을 구체적으로 주장·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