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판결
먼저 구별할 점: 각자대표이사와 공동대표이사
이 판결은 상법 제389조 제2항의 ‘공동대표이사’에 관한 판결이 아니다. 하나의 회사에 대표이사가 여러 명 존재하면서 각자 대표권을 행사하는 복수 대표이사 구조를 전제로 한 판결이다.
1. 복수의 각자대표이사
주식회사에 대표이사가 여러 명 선임되어도 공동대표이사로 정한다는 별도의 결정이 없으면 각 대표이사는 원칙적으로 각자 회사를 대표한다.
각자대표이사는 자신의 명의로 독립하여 대외적 대표행위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내부적으로 업무를 나누어 한 대표이사는 영업을, 다른 대표이사는 재무를 담당하는 등의 사무분장이 가능하다.
2009다61490 판결은 바로 이러한 복수의 대표이사 사이에서 업무를 분담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2. 상법상 공동대표이사
상법 제389조 제2항는 대표이사가 수인인 경우 정관 또는 이사회의 결의로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하여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상법상 공동대표이사는 대외적 대표행위를 공동으로 해야 한다. 공동대표이사 중 1인이 단독으로 대표행위를 하면 원칙적으로 회사에 효력이 없다.
따라서 공동대표이사 제도는 대표권의 단독행사를 제한하여 대표이사 상호 간의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고, 이 사건과 같이 각 대표이사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내부적으로 담당 분야를 나눈 경우와는 구별된다.
사실관계
1. 두 급유대리점 회사의 용역회사 설립
원고 회사는 외국항행선박에 선박용 연료유를 공급하는 회사였다.
원고 회사의 급유대리점이던 제1대리점 회사와 제2대리점 회사는 2001. 6. 29. 선박급유용역을 함께 수행하기 위하여 별도의 용역회사를 설립하였다.
제1대리점 회사의 대표이사였던 피고와 제2대리점 회사의 대표이사가 새로 설립된 용역회사의 대표이사로 각각 취임하였다.
판결문에는 두 사람을 상법 제389조 제2항의 공동대표이사로 정하거나 공동대표로 등기하였다는 사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대표이사가 각자 담당 업무를 나누어 수행하였다는 점을 전제로 감시의무가 문제 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복수의 각자대표이사가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사무를 분장한 경우로 이해해야 한다.
2. 급유용역계약과 실제 급유업무의 수행
용역회사는 2001. 7. 1. 원고 회사와 선박용 연료유 급유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
용역회사는 원고 회사가 지정하는 외국항행선박에 선박용 연료유를 급유하기로 하였으나, 실제 급유업무는 별도의 급유업체가 수행하였다.
법률관계는 다음과 같다.
- 원고 회사: 선박용 연료유 공급자이자 급유용역 발주자
- 용역회사: 원고 회사와 급유용역계약을 체결한 회사
- 피고: 제1대리점 회사 측에서 선임된 용역회사의 대표이사
- 다른 대표이사: 제2대리점 회사 측에서 선임된 용역회사의 대표이사
- 실제 급유업체: 용역회사로부터 실제 급유업무를 맡은 회사
3. 대표이사 사이의 업무분장
제1대리점 회사와 제2대리점 회사는 용역회사의 수익과 업무를 나누어 담당하였다.
(. .) 체결된 공동운영 약정에서는 용역회사의 수익을 일정 비율로 배분하고, 각 회사에 배정된 작업에서 발생한 사고에 관한 민·형사상 책임은 해당 작업을 담당한 회사가 부담하기로 하였다.
또한 2003. 12. 22.에는 제2대리점 회사가 담당하는 MGO(Marine Gas Oil) 및 MDO(Marine Diesel Oil) 관련 작업에서 발생한 사고에 관한 민·형사상 책임을 제2대리점 회사가 부담하기로 약정하였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MGO 급유업무는 제2대리점 회사 측, 즉 피고가 아닌 다른 대표이사 측의 담당 분야였다.
이는 상법상 대표권을 공동으로 행사한다는 약정이 아니라, 용역회사의 업무와 책임을 내부적으로 분담한 약정이었다.
4. 실제 급유업체의 범죄행위
실제 급유업체 관계자들은 2003. 4. 15.부터 2004. 5. 31.까지 약 1년 동안 다음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 외국항행선박의 발주요청서를 허위로 작성하였다.
- 허위 발주요청서를 원고 회사에 제출하여 선박용 연료유를 면세가격으로 공급받았다.
- 연료유를 외국항행선박에 공급하지 않고 중간도매업자 등에게 부정반출하였다.
- 정상적으로 급유한 것처럼 유류공급확인서를 위조하였다.
- 환급대상 수출물품 반입·적재확인신청서를 허위로 작성하였다.
- 허위서류에 세관장의 확인을 받아 원고 회사에 제출하였다.
실제 급유업체 관계자들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확정되었다.
5. 원고 회사의 손해
원고 회사는 해당 연료유가 외국항행선박에 정상적으로 공급된 것으로 알고 교통세 등을 환급받았다.
그러나 연료유가 외국항행선박에 공급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5. 12. 21. 합계 4,907,131,300원의 세금을 부과받았다.
원고 회사는 피고가 용역회사의 대표이사로서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와 실제 급유업체의 업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법 제401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 복수의 각자대표이사가 내부적으로 업무를 나누어 담당한 경우에도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에 대한 감시의무를 부담하는지
- 다른 대표이사 담당 분야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감시의무 위반이 인정되는지
- 피고가 다른 대표이사의 위법행위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사정이 있었는지
- 실제 급유업체에 업무를 맡긴 행위와 원고 회사의 세금 추징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 피고에게 상법 제401조의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는지
대법원의 판단
1. 각자대표이사도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를 감시해야 한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업무집행을 총괄·지휘하는 기관이다.
대표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회사를 위하여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회사 업무 전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복수의 대표이사가 내부적인 사무분장에 따라 각자의 담당 분야를 전담하는 경우에도, 각 대표이사는 다른 대표이사가 담당하는 업무집행에 대해 전반적으로 감시할 의무를 부담한다.
내부적인 업무분장은 업무수행의 효율을 위한 것이지 대표이사의 법정 감시의무를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2. 감시의무는 무제한의 결과책임이 아니다
다른 대표이사의 담당 분야에서 위법행위나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나머지 대표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상법 제401조의 책임을 인정하려면 적어도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사정이 있었고, 해당 대표이사가 이를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채 방치한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판단요소는 다음과 같다.
-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에서 비정상적인 징후가 나타났는지
- 대표이사가 그 징후를 인식하거나 인식할 수 있었는지
- 보고·결재·회계자료 등을 통하여 위법행위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 대표이사가 조사·확인 또는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 그 임무해태와 제3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3. 피고가 범죄행위를 알거나 의심할 사정이 없었다
대법원은 피고가 실제 급유업체 관계자들의 범죄행위에 공모하였거나 범죄행위를 알면서 방임하였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범죄행위는 피고가 아닌 다른 대표이사 측에서 담당하는 MGO 급유업무에서 이루어졌다.
실제 급유업체 관계자들이 약 1년 동안 범죄를 계속하였다는 결과만으로 피고에게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피고가 실제 급유업체의 범죄행위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대표이사의 감시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4. 업무분장 약정 자체는 임무해태가 아니다
원고 회사는 피고가 다른 대표이사에게 해당 업무를 맡기고 대표이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와 다른 대표이사 측 사이에 업무분장과 사고책임에 관한 약정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가 회사 업무 전체를 다른 대표이사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대표이사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내부적인 업무분장 자체는 충실의무나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아니다.
다만 업무를 나누었더라도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에서 위법한 징후가 나타나면 이를 조사하고 시정할 의무는 여전히 존속한다.
5. 급유업무 위탁과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없다
원심은 실제 급유업체에 급유업무를 맡긴 행위를 계약 위반이나 법령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러한 설시는 다소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설령 실제 급유업체에 대한 업무위탁이 계약 또는 법령에 위반되더라도, 업무를 위탁한 행위 자체와 실제 급유업체 관계자들의 별도 범죄행위로 인한 세금 추징 손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위법한 위탁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위탁업체가 저지른 모든 범죄와 그 손해에 대한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6. 상법 제401조의 책임 부정
상법 제401조 제1항에 따라 이사가 제3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려면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무를 해태해야 한다.
그러나 피고에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
- 실제 급유업체의 범죄행위에 공모한 사실
- 범죄행위를 알면서 방임한 사실
- 다른 대표이사의 위법한 업무집행을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징후
- 대표이사로서의 업무를 사실상 전면 포기한 사실
- 업무분장이나 위탁행위와 원고의 세금 추징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따라서 대법원은 피고에게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임무해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결론
대법원은 피고의 상법 제401조에 따른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원심의 결론이 정당하다고 보아 원고 회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결의 의의
1. 복수의 각자대표이사 사이의 상호 감시의무
이 판결은 여러 명의 대표이사가 각자 대표권을 가지면서 내부적으로 업무를 나눈 경우를 전제로 한다.
각자대표이사는 자신의 담당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대표이사의 담당 업무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감시의무를 부담한다.
2. 업무분장은 감시의무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업무분장은 각 대표이사의 주된 담당 영역과 내부적인 책임관계를 정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대표이사 담당 업무라는 사정은 위법행위를 실제로 알거나 의심할 수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사실적 요소가 된다.
3. 위법행위 발생과 감시의무 위반은 구별된다
다른 대표이사의 담당 영역에서 범죄가 발생했다고 하여 나머지 각자대표이사가 당연히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인정하려면 위법행위를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사정, 그 사정에 대한 대표이사의 인식 가능성, 필요한 조치의 부재 및 손해와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어야 한다.
관련판례
1. 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2다8131 판결
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2다8131 판결은 복수의 대표이사가 내부적으로 각자의 분야를 나누어 담당하더라도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에 대한 전반적인 감시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데도 이를 방치했다면 그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제3자에게 상법 제401조의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2009다61490 판결은 이 법리를 계승하면서, 단순히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영역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분명히 하였다.
2. 대법원 1989. 5. 23. 선고 89다카3677 판결
대법원 1989. 5. 23. 선고 89다카3677 판결은 상법상 공동대표이사 제도의 의미를 판시한 것으로, 이 사건과 구별된다.
공동대표제도는 수인의 대표이사가 대외적으로 공동으로만 대표권을 행사하게 하여 대표권 남용을 방지하고 상호 견제를 도모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공동대표이사 중 1인이 특정 사항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대표권 행사를 다른 공동대표이사에게 위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표권을 일반적·포괄적으로 위임하여 다른 공동대표이사 한 사람이 사실상 단독으로 대표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관련법령
상법 제389조
상법 제389조는 이사회가 대표이사를 선정하도록 하면서, 대표이사가 수인인 경우 정관 또는 이사회의 결의로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하여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동대표에 관한 별도의 정함이 없으면 복수의 대표이사는 원칙적으로 각자 회사를 대표한다.
상법 제382조 제2항
상법 제382조의3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가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규정한다.
상법 제401조 제1항
상법 제401조는 이사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무를 해태한 경우 제3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한다.
민법 제681조
민법 제681조는 수임인이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위임사무를 처리할 의무를 규정한다.
최종정리
2009다61490 판결은 상법상 공동대표이사의 공동대표권 행사에 관한 판례가 아니라, 복수의 각자대표이사가 내부적으로 업무를 분담한 경우의 상호 감시의무에 관한 판례이다. 각자대표이사는 다른 대표이사의 업무도 감시해야 하지만, 다른 대표이사 담당 영역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위법행위를 의심할 구체적인 징후를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채 방치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상법 제401조의 책임이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