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담보 목적의 대물변제예약과 배임죄의 성립 여부

핵심 결론 채권 담보를 위해 부동산을 대물변제하기로 예약한 채무자가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소유권이전의무는 원칙적으로 채무자 자신의 사무이므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08도10479, 2014도3363, 2000도4293, 2015도1301, 2019도9756, 2015도6057

관련판례

1. 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은 동산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동산을 인도할 의무는 자기의 사무이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제3자에게 양도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계약상 채무의 이행이 상대방에게 이익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행을 ‘타인의 사무’라고 볼 수 없다는 법리를 제시하였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의 직접적인 법리적 기초가 되었다.

2. 종전 판례의 폐기

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도4293 판결은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목적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소유권이전의무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보아 위 판결을 비롯한 종전 판례를 폐기하였다.

3. 일반 계약상 의무로의 법리 확대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5도1301 판결은 채무자가 담보로 제공한 임차권 등을 유지할 계약상 의무가 있더라도 이는 투자금반환채무의 변제방법에 관한 자기의 사무이므로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4. 통상의 계약관계와 타인의 사무의 구별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은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되려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단순한 이익대립관계를 넘어 상대방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상대방의 채권 실현에 협력하거나 계약을 성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배임죄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5. 주권발행 전 주식의 이중양도

대법원 2020. 6. 4. 선고 2015도6057 판결은 주권발행 전 주식의 양도인이 양수인에게 확정일자 있는 양도통지 또는 승낙을 갖추어 줄 의무도 자기의 사무라고 보았다. 따라서 양도인이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고 주식을 제3자에게 다시 양도하더라도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관련법령

형법 제355조 제2항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함으로써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배임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다음 요건이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
행위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을 것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할 것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 또는 현실적인 손해 발생 위험을 초래할 것
행위자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할 것
고의와 불법이득의사가 인정될 것
이 사건에서는 첫 번째 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가 핵심이었다.

민법 제564조

민법 제564조는 일방예약에서 상대방이 매매를 완결할 의사를 표시하는 때에 매매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대물변제예약도 예약완결권이 행사된 때 비로소 대물변제를 목적으로 하는 본계약의 효력이 발생하는 구조를 가질 수 있다.

민법 제607조

민법 제607조는 차용물의 반환에 관하여 차주가 차용물에 갈음하여 다른 재산권을 이전하기로 약정한 경우 그 재산의 예약 당시 가액이 차용액과 이에 붙인 이자의 합산액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판결

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죄명: 배임
원심: 대구지방법원 2014. 2. 13. 선고 2013노3665 판결
결과: 원심판결 파기환송
다수의견: 배임죄 불성립
반대의견: 대법관 양창수·신영철·민일영·김용덕

사실관계

피고인은 채권자로부터 3억 원을 차용하면서,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하면 피고인의 어머니가 소유한 부동산에 대한 자신의 유증상속분을 대물로 변제하기로 약정하였다.
그 후 피고인은 어머니의 유증에 따라 해당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러나 채권자에게 대물변제를 하지 않고 그 부동산을 자신의 누나와 자형에게 매도하였다.
검사는 피고인이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채권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임에도, 이를 제3자에게 매도하여 약 1억 8,500만 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채권자에게 같은 금액의 손해를 가하였다는 이유로 배임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과 원심은 피고인의 배임죄를 유죄로 판단하였다.

쟁점

채권 담보를 위하여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목적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 배임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소유권이전의무가 다음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가 핵심이었다.
채무자가 자신의 계약상 채무를 이행하는 ‘자기의 사무’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타인의 사무’
다수의견의 법리

1. 배임죄는 단순한 채무불이행을 처벌하는 범죄가 아니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당사자 관계의 본질적 내용이 단순한 채권·채무관계를 넘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채무자가 계약을 이행하면 결과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실현하게 된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의 계약이행을 타인의 사무라고 볼 수 없다.
계약의 성실한 이행은 원칙적으로 채무자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자기의 사무이다.

2. 대물변제예약의 목적은 금전채권의 담보에 있다

담보 목적의 대물변제예약에서 채권자의 주된 관심은 해당 부동산 자체를 취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통하여 금전채권을 변제받는 데 있다.
따라서 대물변제예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차용금반환채무의 이행을 확보하는 것이다.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에 해당한다.

3. 소유권이전의무는 예약 당시 확정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만으로 채무자의 소유권이전의무가 곧바로 확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가 차용금을 변제하지 않고 채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한 후에야 소유권이전의무가 현실적으로 문제 된다. 예약완결권이 행사된 후라도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변제하면 소유권이전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자의 부동산 소유권이전의무를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다.

4. 민사상 구제 가능성도 고려하였다

채무자가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여 소유권이전이 불가능해지더라도 채권자는 다음과 같은 민사상 수단으로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차용금반환청구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요건을 갖춘 경우 사해행위취소청구
처분 전이라면 가처분 등 보전처분
다수의견은 이러한 계약상 분쟁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형벌법규의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결과가 된다고 보았다.
사안에 대한 판단
피고인이 대물변제예약에 따라 채권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줄 의무는 민사상 채무에 불과하고, 채권자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은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를 배임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가 있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하였다.

반대의견

반대의견은 대물변제예약에 따른 담보가치의 보전도 형법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독자적인 신임관계라고 보았다.
대물변제예약을 체결한 채무자는 채권자가 담보물의 소유권 또는 담보가치를 취득할 수 있도록 보전·협력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럼에도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여 채권자의 권리취득을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만들었다면 이는 전형적인 배신행위로서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특히 부동산 이중매매, 이중근저당권설정 및 이중전세권설정에서는 배임죄를 인정하면서 담보 목적의 대물변제예약만 달리 취급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판례 변경의 내용
이 판결은 채권 담보를 위한 대물변제예약의 목적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면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던 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도4293 판결 등을 명시적으로 폐기하였다.
변경 전후의 법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종전 판례: 대물변제예약 후 목적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면 배임죄 성립
변경 판례: 대물변제예약의 이행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이므로 원칙적으로 배임죄 불성립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민사상 채무불이행과 형사상 배임을 구별한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계약상 의무가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가 되려면 단순히 상대방의 권리 실현에 협력한다는 정도를 넘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 자체가 상대방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대물변제예약 목적물을 임의 처분한 행위가 민사상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임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다만 이 판결은 이미 설정·공시된 저당권이나 질권 등 담보권을 고의로 침해하는 모든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은 아니다. 배임죄 성립 여부는 행위자가 단순한 계약상 채무자인지, 아니면 독립적으로 타인의 재산을 관리·보호하는 지위에 있는지를 기준으로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목록으로 업무분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