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판례
1. 법인의 목적 범위
대법원 1991. 11. 22. 선고 91다8821 판결은 법인의 목적 범위 내 행위에는 정관에 명시된 목적 자체뿐만 아니라 그 목적 달성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필요한 행위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01. 9. 21. 자 2000그98 결정은 행위가 법인의 목적 수행에 필요한지 여부를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행위의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2.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한 상대방과의 계약
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6다47677 판결은 거래 상대방이 대표자의 배임행위를 유인·교사하거나 그 전 과정에 관여하는 등 적극 가담하였다면 해당 계약은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3. 무효행위의 묵시적 추인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다83199, 2010다83205 판결은 무효행위의 당사자가 무효임을 알면서 그 행위의 결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로 승인하였다면 묵시적 추인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4. 별개 법인의 대표자를 겸한 자의 쌍방대표
대법원 1984. 12. 11. 선고 84다카1591 판결은 동일인이 서로 다른 법인을 대표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 법인과 이사의 이익상반행위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관련법령
민법 제34조는 법인이 법률의 규정에 따라 정관으로 정한 목적의 범위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한다.
민법 제64조는 법인과 이사의 이익이 상반되는 사항에 관하여 이사에게 대표권이 없고, 특별대리인을 선임하도록 규정한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를 무효로 한다.
민법 제139조는 무효인 법률행위는 추인하여도 효력이 생기지 않지만, 당사자가 무효임을 알고 추인한 때에는 새로운 법률행위를 한 것으로 보도록 규정한다.
상법 제398조는 이사 또는 주요주주 등과 회사 사이의 자기거래에 관하여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다.
판결
사실관계
1.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충전소 사업
원고는 개인택시 운송사업자들로 구성된 법인인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이었다.
원고 조합은 조합원들의 복리증진 등을 위하여 수익사업으로 여러 충전소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충전소 운영 과정에서 상당한 채무가 발생하였다.
당시 원고 조합의 이사장인 소외인은 별도의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의 대표이사도 겸하였다. 이후 소외인은 원고 조합을 대표하는 동시에 신설회사를 대표하여 원고 소유의 충전소 부동산과 운영권 등을 신설회사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2. 대표자의 배임행위와 신설회사의 적극 가담
해당 거래는 원고 조합에는 기존 채무가 정리되는 것 외에 별다른 이익이 없었던 반면, 신설회사에는 충전소 부동산과 운영권을 취득하는 큰 이익을 제공하는 구조였다.
소외인은 원고 조합의 이사장과 신설회사의 대표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었으므로 거래의 양쪽 당사자를 모두 대표하였다.
원심은 소외인의 재산양도행위가 원고 조합에 대한 배임행위이고, 신설회사 측도 단순히 이러한 사정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거래구조를 형성하고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최초 매매계약은 민법 제103조에 위반되는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았다.
3. 조합원들의 반발과 매각승인 취소
원고 조합원들은 충전소 부동산과 운영권이 신설회사에 이전된 사실에 반발하였다.
원고 조합의 임시총회에서는 충전소 매각승인을 취소하는 결의가 이루어졌고, 조합원들은 소외인을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하였다.
따라서 원고 조합은 늦어도 위 매각승인 취소결의 또는 형사고발 무렵에는 소외인의 배임행위와 매매계약의 무효사유를 알고 있었다.
4. 신설회사 주식의 전부 취득과 운영
이후 소외인을 포함한 원고 조합의 제6대 임원들은 자신들이 보유하던 신설회사의 발행주식 5,000주 전부를 원고 조합에 양도하였다.
원고 조합은 신설회사의 발행주식 전부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신설회사를 사실상 지배하였다. 그 후 조합원들을 상대로 신설회사의 주주를 공개 모집하고 증자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원고 조합이 신설회사의 최대주주가 되었고, 원고 조합원 318명도 신설회사의 주식을 보유하였다. 원고 조합의 새로운 임원들은 신설회사의 이사와 감사로 취임하여 회사 운영에 관여하였다.
5. 계약상 채무의 이행과 후속 처분
신설회사는 원고 조합이 충전소 매입 당시 출자한 10억 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전부 변제하였다.
또한 원고 조합이 조합원들의 충전예수금 약 26억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설회사에 이전된 부동산을 가압류하자, 신설회사는 해당 충전예수금도 원고 조합에 지급하였다.
이는 모두 최초 매매계약에 따라 신설회사가 부담하거나 인수한 채무를 이행한 것이었다. 원고 조합은 이행을 수령하고 그 상태를 계속 용인하였다.
나아가 원고 조합은 임시총회결의를 통하여 자신이 보유하던 신설회사의 주식을 신설회사에 다시 양도하였다. 이 결의는 신설회사가 충전소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당연한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 후 원고 조합은 최초 매매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를 청구하였다.
핵심쟁점
이 사건의 핵심쟁점은 다음과 같다.
충전소 부동산 매각이 원고 조합의 정관상 목적 범위 밖의 행위인지
법인 대표자의 배임행위에 거래 상대방이 적극 가담한 경우 계약의 효력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 무효인 계약을 사후에 묵시적으로 추인할 수 있는지
무효의 원인이 소멸하였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동일인이 양쪽 법인의 대표를 겸하여 계약한 것이 이익상반행위에 해당하는지
이익상반행위의 하자도 사후 추인으로 치유될 수 있는지
대법원의 판단
1. 법인의 목적 범위는 넓게 해석한다
법인의 권리능력은 설립근거 법률과 정관상 목적에 의하여 제한된다.
그러나 목적 범위 내 행위는 법률이나 정관에 명시된 사업 자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인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직접 또는 간접으로 필요한 행위라면 모두 목적 범위에 포함된다.
해당 행위가 목적 수행에 필요한지는 대표자가 실제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행위의 객관적 성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사건에서 원고 조합이 충전소 부동산을 신설회사에 양도한 것은 원고가 수익사업으로 시작한 충전소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그 객관적인 성질상 조합 목적의 수행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필요한 행위이므로 법인의 목적 범위를 벗어난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2.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하여 체결된 계약은 무효이다
법인 대표자가 법인에 대한 임무를 위반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계약이 언제나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래안전을 위하여 상대방이 대표자의 배임행위를 단순히 알았다는 사정만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나 상대방이 다음과 같이 대표자의 배임행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면 그 계약은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 무효가 될 수 있다.
대표자의 배임행위를 유인하거나 교사한 경우
배임적인 거래구조를 스스로 조성한 경우
배임행위의 전 과정에 관여한 경우
법인에 손해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대표자와 공동으로 행동한 경우
이 사건에서는 원고 조합의 이사장이 신설회사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었다. 그는 거래 양쪽을 모두 대표하면서 원고 조합보다 신설회사에 현저히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였다.
대법원은 소외인의 행위가 배임행위이고, 신설회사 역시 그 배임행위를 스스로 조성하거나 적극 가담한 것으로 보아 최초 매매계약은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3.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도 무효원인이 소멸한 뒤 새로 승인할 수 있다
민법 제103조에 위반된 계약은 무효이므로 원칙적으로 단순한 추인만으로 유효하게 전환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매매계약이 무효로 된 이유는 대표자의 배임행위로부터 본인인 법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 무효의 원인이 소멸한 후 법인이 계약의 무효사유를 알면서도 진정한 의사로 그 법률효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키기로 승인하였다면 민법 제139조에 따라 새로운 법률행위로서 효력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최초 계약의 효력이 소급하여 회복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효임을 알면서 추인한 때에 같은 내용의 새로운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4. 묵시적 추인은 법인이 자신의 법적 지위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무효행위에 대한 추인은 명시적인 결의나 계약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인의 후속 행위와 태도를 종합하여 묵시적 추인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무효인 계약에 따른 상태를 방치하거나 일부 이행을 수령했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묵시적 추인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다음 요건을 제시하였다.
법인이 계약의 무효사유를 알고 있을 것
법인이 무효행위로 인하여 자신이 처하게 된 법적 지위를 충분히 이해할 것
그럼에도 진정한 의사에 따라 행위의 결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키기로 승인하였다고 볼 사정이 있을 것
추인 당시 최초 행위를 무효로 만든 원인이 소멸하였을 것
5. 이 사건에서는 무효원인이 소멸하였다
최초 계약은 원고 조합의 대표자와 신설회사가 조합에 손해를 주고 신설회사에 이익을 귀속시키는 배임적 구조 때문에 무효였다.
그러나 이후 원고 조합이 신설회사의 발행주식 전부를 취득하였다. 이에 따라 신설회사의 이익이 사실상 원고 조합에 귀속되는 구조가 형성되었고, 원고는 배임행위로 인한 손실을 회복하였다.
대법원은 이때 악의적인 배임으로 인한 위법상태와 최초 계약의 무효원인이 해소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 후 원고 조합원들이 신설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고 원고의 새로운 임원들이 신설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였으므로, 신설회사는 더 이상 종전 대표자 개인의 이익을 위한 회사로만 볼 수 없었다.
6. 원고 조합의 후속 행위는 묵시적 추인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다음 사정을 종합하여 원고 조합이 최초 매매계약을 묵시적으로 추인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조합이 배임행위와 계약의 무효사유를 알고 있었다.
원고 조합이 신설회사의 발행주식 전부를 취득하였다.
조합원 공개모집과 증자를 통해 조합원들이 신설회사의 주주가 되었다.
원고 조합의 새로운 임원들이 신설회사의 이사와 감사로 취임하였다.
신설회사가 매매계약상 부담한 출자금 10억 원을 원고에게 변제하였다.
신설회사가 충전예수금 약 26억 원을 원고에게 지급하였다.
원고는 위 계약상 이행을 수령하고 계속 용인하였다.
원고 총회가 신설회사의 부동산 소유를 전제로 보유주식을 다시 양도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러한 후속 행위들은 원고 조합이 최초 매매계약의 법률효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키려는 진정한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최초 계약은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 무효였지만, 무효원인이 소멸한 뒤 이루어진 묵시적 추인에 따라 새로운 법률행위로서 효력이 인정되었다.
7. 별개 법인의 대표자를 겸한 자의 계약은 원칙적으로 이익상반행위이다
원심은 소외인이 원고 조합의 이사장과 신설회사의 대표이사를 겸하여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소외인 개인이 직접 거래 상대방이 된 것은 아니므로 법인과 이사의 이익상반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분의 원심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민법 제64조의 이익상반사항은 법인과 이사가 직접 거래하는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사의 개인적 이익과 법인의 이익이 충돌하여 이사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기대하기 어려운 모든 경우를 포함한다.
동일인이 형식상 별개의 두 법인의 대표를 겸하면서 양쪽 법인을 모두 대표하여 계약을 체결하면 쌍방대리가 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대표자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각 법인의 이익이 충돌할 염려가 있으므로 이익상반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은 특별대리인 선임 등 적법한 대표절차를 거쳐야 할 거래였다.
8. 이익상반행위의 하자도 묵시적 추인으로 치유되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 사건 거래를 이익상반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법리적으로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최초 매매계약은 배임행위에 대한 적극 가담으로 이미 무효였고, 원고 조합은 그 무효원인이 소멸한 뒤 계약의 효과를 묵시적으로 추인하였다.
그 묵시적 추인에는 대표자의 이익상반행위로 인한 대표권의 하자까지 승인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원심의 이익상반행위에 관한 법리오해는 있었지만 판결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결론
대법원은 충전소 부동산의 매각이 원고 조합의 수익사업에서 발생한 채무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인의 목적 범위 내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최초 매매계약은 대표자의 배임행위에 상대방 회사가 적극 가담하여 체결된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이므로 무효였다. 또한 동일인이 원고 조합과 상대방 회사를 모두 대표한 것은 원칙적으로 이익상반행위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원고 조합은 신설회사의 주식 전부를 취득하여 배임으로 인한 손실과 위법상태를 해소한 뒤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수령하고, 신설회사의 부동산 소유를 전제로 한 후속 결의를 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를 무효사유를 알면서 계약의 결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키기로 한 묵시적 추인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배임적 거래의 무효, 무효행위의 추인 및 이익상반행위가 결합된 사안에서 법률관계를 단계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첫째, 대표자의 배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계약이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배임행위를 유인·교사하거나 거래구조를 조성하고 전 과정에 관여하는 등 적극 가담해야 민법 제103조에 따른 무효가 인정된다.
둘째,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라도 그 무효가 오직 본인인 법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위법상태가 해소되었다면, 법인이 무효사유를 알면서 진정한 의사로 그 결과를 승인함으로써 민법 제139조에 따른 새로운 법률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셋째, 묵시적 추인은 단순한 방치나 침묵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법인이 자신의 법적 지위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계약의 이행을 수령하고, 상대방의 권리취득을 전제로 후속 처분이나 조직변경을 하는 등 명확한 승인행위가 있어야 한다.
넷째, 동일인이 별개의 두 법인을 모두 대표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익상반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거래 당시 적법한 승인이나 특별대리인 선임 등 이해충돌을 통제하는 절차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