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3자를 위한 계약의 판별과 병존적 채무인수 — 매매대금을 매도인의 채권자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한 약정

핵심 결론 어떤 계약이 제3자를 위한 계약인지는 제3자에게 직접 권리를 취득하게 하려는 당사자 의사의 해석 문제이고, 병존적 채무인수와 이행인수의 구별도 채권자가 인수인에 대하여 직접 채권을 취득하게 할 의사가 있는지에 달려 있으며, 제3자의 권리가 생긴 후에는 합의해제로 그 권리를 소멸시키지 못한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해당 판례

대법원 1997. 10. 24. 선고 97다28698 판결 [부당이득금반환] — 재판장 정귀호, 박준서, 김형선, 이용훈 대법관
  • 공1997.12.1.(47), 3602
  •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
  • 원고(피상고인) 매수인, 피고(상고인) 매도인의 채권자
  • 판시사항 3개: [1]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의의 및 판별 기준, [2] 제3자를 위한 계약인 채무인수와 이행인수의 판별 기준, [3] 매매대금을 매도인의 채권자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한 약정을 제3자를 위한 계약이자 병존적 채무인수로 본 사례
이 판결은 제3자를 위한 계약의 판별 기준과 병존적 채무인수·이행인수의 구별 기준을 한 문장으로 정식화한 것으로, 이후 하급심과 대법원 판결에서 표준 인용례로 자리잡았습니다. 부동산 거래,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채권양도 대체 구조 등 실무 전반에서 가장 자주 원용되는 판시입니다.
심급 경과
구분사건번호결론
제1심(사건번호 불명)
항소심대전고법 1997. 5. 27. 선고 96나3904제3자를 위한 계약·병존적 채무인수 인정. 다만 합의해제 항변은 배척
상고심대법원 1997. 10. 24. 선고 97다28698파기환송(합의해제 부분 심리미진)
파기의 범위에 유의: 대법원은 제1, 2점(계약의 성질)에 관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유지했고, 제3점(합의해제 여부)만 심리미진·채증법칙 위배로 파기했습니다. 따라서 판시사항 [1]~[3]은 상고기각된 부분의 법리이고, 파기 사유는 민법 제541조의 적용에 관한 사실인정 부분입니다.

관련 법령

관련 판례

쟁점판례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의의와 판별 기준(의사해석의 문제)대법원 1996. 1. 26. 선고 94다54481 판결(본 판결이 직접 인용)

사실관계

계약의 구조
  • 소외 1이 경영하는 소외 회사가 자금난을 겪음
  • 소외 1(부)과 소외 2(아들)는 이 사건 부동산의 각 1/2지분을 원고 및 소외 3에게 8억 9,000만 원에 매각
  • 계약금 교부 후, 소외 1의 채권자인 피고의 요청으로 나머지 중도금 및 잔금을 원고 등이 피고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을 체결
약정의 명확화 조치
  • 소외 3의 위임을 받은 원고와 매도인들은 약정 내용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매도인들이 피고에게 중도금 및 잔금에 대한 수령권을 위임한다는 취지의 지불위임장(갑 제1호증)을 작성
  • "피고 귀하"라고 표시하고 공증까지 마침
이행 경과
  • 소외 1이 약정과 달리 1차 중도금을 스스로 수령했다고 피고로부터 의심받자, 이를 불식하기 위한 소외 1의 요구로 원고는 중도금 지급기일보다 앞당겨 이자 상당액 300만 원을 공제한 중도금 2억 9,700만 원을 피고의 예금계좌에 입금
  • 원고는 잔금 지급기일인 1992. 3. 31.까지 잔금을 지급하지 아니함
이중매도와 그 후의 정황(파기 사유의 근거)
  • 1992. 8. 7. 매도인들이 이 사건 부동산을 소외 4에게 이중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 완료
  • 1992. 8. 11.경(등기 후 나흘) 원고는 소외 1로부터 그때까지 지급한 계약금 및 중도금에 해당하는 3억 9,000만 원 약속어음을 교부받고, 소외 1 소유 임야 등 6필지에 채권최고액 4억 5,000만 원, 근저당권자 원고로 하는 근저당권 설정
  • 원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은행대리로 근무했으면서도, 장기간 잔금 미지급 상태에서 매도인들의 처분을 막기 위한 처분금지가처분 등을 해 두지 않음
  • 소외 1이 1993. 11. 20.경 부도가 날 때까지도, 그 이후에도 원고는 이중매도의 배임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이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대금반환 요구를 한 바 없음
  • 원고는 **소 제기 직전인 1995. 2. 21.**에야 비로소 내용증명으로 계약해제를 통고
  • 피고에게도 이 사건 소송 이전까지 반환을 청구한 바가 전혀 없음
  • 증인 소외 5는 소외 1이 경영하던 회사의 전무이사였고, 이 사건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받았다가 1992. 8. 10. 해지·말소해 준 사실이 있어 매매계약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지위였음

법리

[1]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의의와 판별 기준
제3자를 위한 계약이란 통상의 계약이 그 효력을 당사자 사이에서만 발생시킬 의사로 체결되는 것과 달리, 계약 당사자가 자기들 명의로 체결한 계약에 의하여 제3자로 하여금 직접 계약 당사자의 일방에 대하여 권리를 취득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다.
어떤 계약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의 의사가 제3자에게 직접 권리를 취득하게 하려는 것인지에 관한 의사해석의 문제이고, 다음을 종합하여 계약 당사자의 합리적 의사를 해석함으로써 판별한다.
  • 계약 체결의 목적
  • 계약에 있어서의 당사자의 행위의 성질
  • 계약으로 인하여 당사자 사이 또는 당사자와 제3자 사이에 생기는 이해득실
  • 거래 관행
  • 제3자를 위한 계약제도가 갖는 사회적 기능
[2] 병존적 채무인수와 이행인수의 구별
구분병존적 채무인수이행인수
성질제3자를 위한 계약의 하나채무자와 인수인 사이의 계약
내용채권자로 하여금 인수인에 대하여 새로운 권리를 취득하게 함인수인이 변제 등으로 채무를 소멸시켜 채무자의 책임을 면하게 할 것을 약정
채권자의 지위인수인에 대한 직접 청구권 취득인수인에 대한 직접 채권을 취득하지 못함
인수인의 의무 상대방채권자 및 채무자채무자에 대한 관계에서만 부담
결국 판별 기준은 계약 당사자에게 제3자 또는 채권자가 계약 당사자 일방 또는 인수인에 대하여 직접 채권을 취득케 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고, 구체적으로는 ⓐ 계약 체결의 동기·경위 및 목적, ⓑ 계약에 있어서의 당사자의 지위, ⓒ 당사자 사이 및 당사자와 제3자 사이의 이해관계, ⓓ 거래 관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의사를 해석해야 한다.
[3] 이 사건에의 적용 — 보상관계와 대가관계의 확인
원심(대법원이 유지)은 다음과 같이 3면 관계를 특정했다.
지위당사자관계
낙약자원고(매수인)매도인들과 사이에 보상관계 — 중도금·잔금을 지급하는 대신 부동산 지분 취득, 그 대금은 피고에게 지급함으로써 지급에 갈음
요약자매도인들피고와 사이에 대가관계 — 소외 1의 피고에 대한 채무는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함으로써 소멸
수익자(제3자)피고(매도인의 채권자)원고에 대한 중도금·잔금 직접청구권 취득
따라서 이 사건 약정은 제3자를 위한 계약에 해당하는 동시에, 원고가 소외 1의 피고에 대한 채무를 인수하는 병존적 채무인수에도 해당한다. 피고의 "수령권한 위임 또는 이행인수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배척되었다.
판단을 뒷받침한 구체적 정황은 다음과 같다.
  • 약정이 피고의 요청으로 추가되었다는 점(제3자에게 권리를 주려는 목적이 명확)
  • "피고 귀하"라고 표시한 지불위임장을 작성하고 공증까지 마친 점
  • 원고가 실제로 피고의 계좌에 직접 입금한 점
[4] 민법 제541조 — 제3자의 권리 발생 후의 합의해제
민법 제541조는 "제539조에 의하여 제3자의 권리가 생긴 후에는 당사자는 이를 변경 또는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계약 당사자는 제3자의 권리가 발생한 후에는 합의해제를 할 수 없고, 설사 합의해제를 하더라도 그로써 이미 제3자가 취득한 권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5] 파기 이유 — 합의해제 인정 여부의 심리미진
원심은 합의해제 항변에 부합하는 증인 소외 5의 증언을 배척했으나, 대법원은 다음 정황에 비추어 "원고가 이미 지급한 계약금 및 중도금에 해당하는 금원을 회수하고자 소외 1로 하여금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매매계약을 합의해제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 원고가 은행대리로 근무했으면서도 처분금지가처분 등 보전조치를 하지 않은 점
  • 이중매도 등기 직후 나흘 만에 약속어음과 근저당권을 확보한 점(대체 담보의 신속한 취득)
  • 이중매도에 대해 형사책임 추궁도, 채무불이행 해제도 하지 않은 점
  • 계약해제 통고가 약 2년 6개월 후 소 제기 직전에야 이루어진 점
  • 피고에게 소송 전까지 반환을 청구한 바가 전혀 없는 점
  • 증인 소외 5가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지위였던 점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 계약이 유효한 상태인데도 약속어음·근저당권을 받게 된 경위, ⓑ 이중매도 후 즉시 책임을 묻지 않고 뒤늦게 해제를 통지한 경위, ⓒ 피고에게 반환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를 더 심리한 다음 증언의 신빙성을 판단했어야 한다.
논리 구조에 유의할 점: 대법원이 파기한 방향은 원고에게 불리한 쪽이다. 즉 "합의해제가 있었다면 민법 제541조에 의해 피고에게 대항할 수 없어 부당이득반환청구가 배척된다"는 구조이므로, 합의해제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피고의 방어를 강화한다.

실무적 유의점

계약 설계 단계
  1. "직접 청구할 수 있는가"가 모든 것을 가른다. 제3자를 위한 계약이면 제3자가 낙약자에게 직접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이행인수면 채무자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조문 한 줄의 차이로 제3자의 지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2.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만들려면 문언에 명시하라. 이 사건에서는 ⓐ 제3자를 수신인으로 표시한 문서 작성, ⓑ 공증, ⓒ 실제 직접 입금이라는 세 가지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계약서에 "수익자는 낙약자에 대하여 직접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고 수익의 의사표시 방법을 정해 두는 것이다.
  3. 반대로 이행인수에 그치게 하려면 "제3자에게 직접 청구권을 부여하지 아니한다", "이 약정은 채무자에 대한 관계에서만 효력을 가진다"는 취지를 명시해야 한다. 단순히 "매수인이 매도인의 채무를 대신 변제한다"고만 쓰면 해석 다툼이 생긴다.
  4. 병존적 채무인수는 면책적 채무인수와 구별하라. 병존적 인수에서는 원래 채무자가 여전히 책임을 진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채무자가 둘로 늘어나는 것이므로 유리하고, 그래서 채권자의 승낙 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 면책적 인수를 의도한다면 채권자의 승낙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수익자(제3자) 측
  1. 수익의 의사표시를 조기에, 증거가 남는 방식으로 하라. 민법 제541조의 보호는 권리가 발생한 후에만 작동한다. 수익의 의사표시 전이라면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계약을 변경·해제할 수 있다. 내용증명이나 서면 통지로 시점을 확정해 두어야 한다.
  2. 일단 권리가 발생하면 당사자들의 합의해제는 무력하다. 이 사건에서 피고가 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합의해제가 인정되면 민법 제541조에 의해 원고가 피고에게 대항하지 못하므로, 피고는 받은 돈을 반환할 필요가 없어진다.
  3. 다만 낙약자의 항변은 그대로 받는다. 제3자의 권리는 보상관계(낙약자·요약자 사이의 계약)에 기초하므로, 낙약자는 그 계약상의 항변을 수익자에게 주장할 수 있다. 수익자의 지위가 무제한 강한 것은 아니다.
낙약자(대금을 지급하는 쪽) 측
  1. 제3자에게 지급한 돈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 사건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했으나, 계약의 성질이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인정된 이상 피고의 수령에는 법률상 원인이 있다. 지급 전에 성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2. 계약을 해소하고 싶다면 제3자의 수익의사표시 전에 움직여라. 그 후에는 요약자와 합의해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3. 권리 행사의 태도가 사실인정을 좌우한다. 이 사건 원고의 패인은 법리가 아니라 행태였다. 잔금 미지급, 보전처분 부작위, 이중매도 직후의 신속한 대체담보 확보, 형사고소·해제의 부작위, 2년 6개월의 침묵. 대법원은 이 흐름을 "합의해제가 있었다"는 방향으로 읽었다. 계약 위반을 당했다면 즉시, 일관되게 권리를 행사하는 외형을 남겨야 한다.
소송 실무
  1. 계약 성질 다툼에서는 의사해석의 네 가지 요소(동기·경위·목적 / 당사자 지위 / 이해관계 / 거래관행)를 항목별로 나누어 주장하라. 판시가 그 틀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따라가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2. 처분문서의 수신인 표시와 공증 여부는 강력한 증거다. "OO 귀하"라는 한 줄이 이행인수와 제3자를 위한 계약을 가르는 근거가 되었다.
  3. 당사자의 직업·경력도 사실인정 요소로 쓰인다. 원고가 은행대리였다는 점은 "그런 사람이 보전조치를 안 했을 리 없다"는 추론의 발판이 되었다. 금융·부동산 실무 경험자가 당사자라면 왜 통상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를 미리 설명해 두어야 한다.
  4. 상고심에서 일부만 파기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계약 성질에 관한 원심 판단은 유지되고 합의해제 부분만 파기되었으므로, 환송 후 심리는 합의해제 여부에 집중된다. 파기 범위를 정확히 읽어야 환송 후 전략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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