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권대리만 주장하면 표현대리까지 판단받을 수 있는가

핵심 결론 유권대리와 표현대리는 성립에 필요한 주요사실이 다르므로, 유권대리 주장에 표현대리 주장이 당연히 포함되지 않는다. 표현대리를 별도로 주장하지 않았다면 법원은 그 성립 여부까지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 종전 판례를 변경한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와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로 연결되지 않는 판례·법령은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 등을 판결문과 원문을 직접 확보·확인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해당판결

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매매대금반환〕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매매대금 반환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 유권대리 주장에 표현대리 주장이 포함된다고 보았던 종전 판례의 견해를 명시적으로 폐기하였다.
하급심

가. 제1심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1982. 11. 10. 선고 82가합105 판결
원심판결에 나타난 소송 경과에 따르면 원고가 승소하였으나, 피고의 항소로 취소되었다. 제1심의 구체적인 판단 근거는 제공된 판결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나. 원심

대구고등법원 1983. 6. 17. 선고 82나1609 판결
원고의 매매계약 체결 전에 건축업자의 분양대리권이 이미 소멸하였다고 인정하여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은 원고가 건축업자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데 과실이 없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표현대리 관련 판단 자체가 불필요한 판단이라고 보았다.

관련판례

가. 이 판결에 의하여 변경된 종전 판례

대법원 1964. 11. 30. 선고 64다1082 판결
유권대리 주장에 표현대리 주장이 포함되는지에 관하여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과 다른 견해를 취한 판결이다.
이 사건 전원합의체는 해당 견해를 명시적으로 폐기하였다. 따라서 유권대리만 주장하더라도 표현대리가 함께 심판 대상이 된다는 근거로 종전 판례를 인용해서는 안 된다.

나. 표현대리의 주장 대상을 구체화한 후속 판례

대법원 1984. 7. 24. 선고 83다카1819 판결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하면서, 표현대리를 주장하려면 무권대리인과 그 사람이 한 구체적인 무권대리행위를 특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특정인의 행위에 관한 표현대리 주장이 다른 사람의 행위에 관한 표현대리 주장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관련법령

가. 민법 제114조 — 대리행위의 효력

대리인이 권한 범위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여 한 의사표시의 효력이 본인에게 직접 귀속되는 근거이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주장한 유권대리에 따른 계약효과의 귀속과 관련된다.

나. 민법 제129조 — 대리권 소멸 후의 표현대리

대리권이 소멸하였더라도 일정한 요건 아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여 본인에게 책임을 부담시키는 규정이다.
이 사건은 한때 존재하였던 분양대리권이 매매계약 체결 전에 소멸한 사안이므로, 표현대리를 별도로 주장하였다면 이 규정의 적용 여부가 문제될 수 있었다.

다. 구 민사소송법 제188조 — 판결 당시 참조조문

판결의 참조조문에는 당시의 “민사소송법 제188조”가 기재되어 있다. 현재의 법령과 구분하여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제188조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 법원이 판결하지 못한다는 처분권주의 규정으로, 현재의 민사소송법 제203조에 대응한다. 위 개정연혁 표시는 현행법과 구별하기 위한 보충 표시이다.
다만 이 사건의 직접적인 법리적 쟁점은 주요사실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 필요성, 즉 변론주의이다.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를 동일한 개념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사실관계

가. 토지 소유자인 피고와 건축업자 사이의 관계

피고는 1980. 7. 1. 건축업자에게 자신의 토지 약 300평을 1억 500만 원에 매도하고 계약금 1,500만 원을 받았다.
건축업자는 그 토지 위에 아파트를 건축하되, 건축허가 명의는 피고로 하기로 하였다. 토지 명의와 건축허가 명의가 피고에게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와 그 대지지분을 분양하는 편의를 위하여 피고가 건축업자에게 분양권한을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건축업자는 아파트 분양대금으로 피고에게 토지대금을 지급하기로 하였고, 피고는 자신의 명의로 된 분양위임장을 교부하였다.
따라서 건축업자는 단순히 피고의 영업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토지를 매수하여 아파트를 건축·분양하는 사업자이면서 피고 명의의 분양권한도 부여받은 사람이었다.

나. 분양권한의 철회와 피고의 직접 분양

건축업자는 아파트 일부를 분양하고도 약정한 토지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피고와 건축업자는 1980. 9. 15. 분양권 위임을 합의해지하였다. 피고는 분양위임장을 회수하였고, 건축업자는 나머지 아파트를 피고의 입회 아래 매각하기로 하였다.
이후 피고는 토지대금 정리와 관련하여 아파트 분양권을 넘겨받아 직접 분양에 관여하였다.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서는 피고가 분양한다는 취지의 입간판도 분양사무실 입구에 설치하였다.

다. 원고와 건축업자의 매매계약

원고는 1981. 3. 25. 건축업자로부터 해당 아파트 B동 103호를 1,450만 원에 매수하고 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이때 건축업자의 분양대리권이 이미 소멸하였고, 건축업자가 여전히 피고에게서 분양권한을 위임받은 것처럼 행세하여 원고에게 매도하였다고 인정하였다.
이 사건의 핵심적인 시간 순서는 다음과 같다.
시점사실
1980. 7. 1.피고가 건축업자에게 토지를 매도하고 분양권한을 부여
1980. 9. 15.분양권 위임 합의해지 및 위임장 회수
1981. 3. 25.원고가 건축업자와 아파트 매매계약 체결 및 대금 지급
1982. 2. 23.피고가 해당 아파트를 제3자에게 매도
1982. 3. 6.제3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

라. 원고가 피고에게 매매대금 반환을 청구한 이유

피고가 해당 아파트를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치자, 원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건축업자는 피고의 적법한 대리인이므로, 그와 체결한 매매계약은 피고에게 효력이 있다. 피고가 아파트를 제3자에게 처분하였으므로 소장 송달로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피고에게 매매대금 1,450만 원의 반환을 구한다.
즉, 대금을 실제 받은 건축업자가 아니라, 그 매매계약의 효과가 귀속된다고 주장하는 본인인 피고를 상대로 계약해제에 따른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다.
원고는 건축업자에게 실제 대리권이 있었다고 주장하였지만, 원심 변론종결 시까지 대리권이 없더라도 표현대리에 따라 피고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법리

가. 법원의 심판 대상이 되는 주요사실은 당사자가 주장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한 주요사실만이 심판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주요사실은 단순한 사건의 배경이나 증거자료가 아니라, 청구 또는 항변의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 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법원이 어떤 법률효과를 인정하려면 그 효과를 뒷받침하는 주요사실이 소송상 주장되어 있어야 한다. 기록에 관련 자료가 있다는 사정과 그 사실이 주장되었다는 것은 구별된다.

나. 유권대리와 표현대리는 효과가 같더라도 성립 근거가 다르다

유권대리와 표현대리는 모두 대리행위의 효과가 본인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그 근거는 다르다.
구분유권대리표현대리
실제 대리권해당 행위에 관한 대리권이 존재해당 행위에 관한 대리권이 없음
본인에게 효과가 귀속되는 근거실제로 수여된 대리권거래 상대방 보호를 위한 법률 규정
주장할 내용대리권 수여 사실과 권한 범위 등해당 표현대리 유형의 성립요건을 이루는 사실
이 사건에서의 주장건축업자에게 유효한 분양대리권이 있었다는 주장권한이 소멸했더라도 피고가 거래효과를 부담하여야 한다는 별도의 주장
특히 대법원은 표현대리가 성립하더라도 무권대리행위가 유권대리행위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본인에게 효과가 귀속된다는 결론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두 주장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다. 유권대리 주장에 표현대리 주장이 당연히 포함되지 않는다

원고는 상고심에서 “건축업자가 피고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한 이상 표현대리도 주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다투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권대리와 표현대리는 성립에 필요한 주요사실이 다르므로, 실제 대리권이 있었다는 주장만으로 실제 대리권이 없더라도 표현대리책임이 성립한다는 주장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표현대리에 관한 별도의 주장이 없다면 법원은 유권대리를 부정한 뒤 표현대리의 성립 여부까지 나아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

라. 원심의 무과실 판단을 대법원이 정당하다고 승인한 것은 아니다

원심은 대리권 소멸을 인정한 데 더하여, 원고가 건축업자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데 과실이 없다는 자료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고는 이 부분이 표현대리에 관한 증명책임을 잘못 배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증명책임 문제를 해결하여 원심 판단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다. 표현대리 주장이 없었으므로 그 성립 여부에 관한 판단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판단에 증명책임을 뒤바꾼 잘못이 있더라도 판결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판결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 정확하지 않다.
  • 대법원이 원고의 과실을 확정적으로 인정하여 표현대리를 부정하였다.
  • 대법원이 민법 제129조의 무과실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부담시켰다.
정확한 취지는 표현대리 주장이 제출되지 않아 그 성립 여부 및 관련 증명책임 문제가 결론을 좌우할 심판사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 차이

쟁점원심대법원
계약 당시 실제 대리권이미 소멸하였다고 판단원심의 사실인정 수긍
표현대리 관련 판단원고의 무과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부가적으로 판단별도 주장이 없으므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봄
증명책임 문제원고의 무과실 증명 부족을 언급그 판단에 잘못이 있더라도 결론에 영향이 없다고 봄
최종 결론매매대금 반환청구 기각상고기각으로 원심 결론 유지
원심의 청구기각 결론이 유지되었다는 것과 원심이 제시한 모든 판단 이유가 승인되었다는 것은 구별하여야 한다.

실무적 유의점

가. 유권대리와 표현대리를 주위적·예비적 주장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대리권의 존부나 소멸 시점이 다투어지는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이 공격·방어방법을 구성할 수 있다.
  • 주위적으로: 계약 체결 당시 실제 대리권이 존재하였으므로 계약효과가 본인에게 귀속된다.
  • 예비적으로: 실제 대리권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해당 표현대리의 요건이 충족되어 본인이 책임을 부담한다.
이는 반드시 별개의 청구를 추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일한 청구를 뒷받침하는 법률상·사실상 근거를 구분하여 제출한다는 의미이다.

나. 표현대리라는 명칭보다 그 요건을 이루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실무상 표현대리라는 법률용어만 덧붙이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누가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본인이 어떤 권한 또는 외관을 부여하였는지, 상대방이 어떤 사정을 신뢰하여 거래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하여야 한다. 대리권 소멸 후의 표현대리라면 종전 대리권의 존재·범위, 소멸 경위와 거래 당시의 사정이 중요하다.
법률적 명칭을 사용했는지만이 아니라 준비서면과 변론 전체에서 필요한 사실관계와 주장 취지가 드러나는지를 점검하여야 한다.

다. 표현대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행위를 특정하여야 한다

여러 임직원이나 중간 대리인이 관여한 거래에서는 “회사의 표현대리가 성립한다”는 포괄적인 주장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후속 판례가 확인한 것처럼, 특정인의 특정 행위에 관한 표현대리 주장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거래행위에 당연히 확장되지는 않는다.

라. 상고심에서 증명책임을 다투기 전에 사실심의 주장 내용을 확인하여야 한다

증명책임은 해당 사실이 적법하게 심판 대상이 된 것을 전제로 문제된다.
이 사건 원고는 상고심에서 증명책임의 오류를 지적하였지만, 표현대리를 사실심에서 주장하지 않았다는 선행 문제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준비서면 검토에서는 증거의 충분성에 앞서 필요한 주요사실과 예비적 법률구성이 제출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 글이 다룬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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