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국법상 보험증권에 기재되지 않은 선체용선자의 보험금청구권

핵심 결론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한 선박보험에서 보험증권에 없는 선체용선자가 피보험자가 되려면, 계약 체결자가 그를 대리할 권한과 의도로 보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보험료를 부담하고 운항자로 표시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7다208232

해당 판례

대법원 2019. 12. 27. 선고 2017다208232, 208249 판결 [선박보험금수령권확인청구의소등·공탁금출급권자확인의소등]
  • 원고(반소피고): 선박의 선체용선자인 에스앤비코리아 주식회사
  • 피고(반소원고): 선박소유자인 지엠 쉽핑 코퍼레이션(GM Shipping Corp.)
  • 보험계약 체결자 겸 선박관리자: 주식회사 수승코퍼레이션
  • 보험자: 현대해상화재보험 주식회사
  • 결과: 원고의 상고 기각
  • 최종 보험금 귀속자: 보험증권상 피보험자이자 선박소유자인 피고
하급심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22. 선고 2014가합527289(본소), 2014가합554359(반소) 판결
제1심은 선박소유자인 피고가 공탁금출급청구권자라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선박소유자인 피고의 원고에 대한 미지급 용선료 청구도 일부 받아들였다.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7. 1. 10. 선고 2015나2029365(본소), 2015나2029372(반소) 판결 [선박보험금수령권확인청구의소등·공탁금출급권자확인의소등]
원심은 보험금 1,430,390,619원에 대한 공탁금출급청구권이 선박소유자인 피고에게 귀속된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피고가 보험금 전액을 취득함으로써 선체용선자인 원고에게 반환해야 할 부당이득이 발생한다고 보아, 피고에게 원고가 지급한 선박인도금 상당액 207,796,772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또한 제1심판결 중 원고에게 미지급 용선료 지급을 명한 부분은 취소하고, 그에 관한 피고의 반소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원심의 판단을 모두 정당하다고 보았다.
  • 보험계약의 준거법은 영국법이다.
  • 보험증권에 기재되지 않은 선체용선자는 피보험자가 아니다.
  • 보험금 공탁금출급청구권은 보험증권상 피보험자인 선박소유자에게 귀속된다.
  • 원고가 지급한 50개월분의 용선료는 선박 사용의 대가이므로 부당이득 반환대상이 아니다.
  • 피고가 원고에게 반환할 금액은 선박인도금 19,370,000엔 상당액에 한정된다.
이에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관련 판례

이 판결은 영국법상 ‘현명되지 않은 본인 또는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를 직접 다룬 판결로서, 판결문에 별도의 국내 참조판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판결의 중요한 의미는 보험증권에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사람이 피보험자로 인정될 수 있는 요건을 영국법상 대리법리에 따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는 데 있다.

관련 법령

  • 판결 당시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따른다고 규정하였다. 이 사건 보험계약은 2022년 전부개정 전 국제사법이 적용된 사안이다. 위 조항은 현재 국제사법 제46조 제1항에 해당한다.
  • 상법 제665조 보험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약정한 보험료를 지급하고 상대방이 재산 또는 생명이나 신체에 관하여 불확정한 사고가 생길 경우 일정한 보험금이나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 상법 제666조 제7호의2 보험증권에 피보험자를 기재하도록 규정한다.

사실관계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
해상운송업체인 원고는 2008년 4월 13일 파나마 법인인 피고와 선박에 관한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상 선박소유자는 피고이고 선체용선자는 원고였다. 용선기간은 50개월이었으며, 용선기간이 끝나면 피고가 원고에게 선박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다음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 1일 130,000엔의 용선료
  • 선박인도금 38,000,000엔
  • 선박보험료를 비롯한 선박 유지비용
  • 선박 수리·정비비용
원고는 선박을 인도받아 운항하면서 2013년 6월 27일까지 피고에게 총 217,100,000엔의 용선료를 지급하였다. 그러나 용선료 지급이 일부 지연되었고, 당초 용선기간이 끝난 후에도 선박을 계속 사용하였다.
선박보험계약
원고는 수승코퍼레이션에 선박관리를 맡겼다. 수승은 2013년 7월 6일 현대해상과 선박의 멸실 또는 훼손을 보험사고로 하는 선박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보험계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보험금: 미화 1,350,000달러
  • 보험기간: 2013년 7월 8일부터 1년
  • 보험증권상 피보험자: ‘소유자 피고, 관리자 수승’
  • 운항자: 원고
  • 적용약관: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
보험증권에는 이 보험이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른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보험료는 선체용선자인 원고가 부담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보험증권의 피보험자란에 기재되지 않고 ‘운항자’로만 표시되었다.
과거 보험증권과 피보험자 변경
2012년 7월 6일 체결된 직전 보험계약에서는 보험증권상 피보험자가 ‘소유자 원고, 관리자 수승’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3년 보험계약에서는 피보험자 중 소유자가 원고에서 실제 선박소유자인 피고로 변경되었다.
이 변경은 단순한 오기나 수승의 실수가 아니었다. 원고와 수승 담당자 사이의 협의를 거쳐 이루어졌고, 실제 선박소유자인 피고의 피보험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선박 침몰과 보험금 공탁
선박은 2013년 7월 12일 쇳가루를 싣고 인천항에서 일본 와카야마항으로 항해하던 중 통영시 백도 인근 해상에서 화물창 폭발로 침몰하였다.
사고조사 결과 원고 측의 특별한 귀책사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후 원고는 자신이 실질적인 피보험자라고 주장하며 현대해상에 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반면 피고도 보험증권상 피보험자이자 선박소유자로서 자신이 정당한 보험금청구권자라고 주장하였다.
현대해상은 보험금의 정당한 수령자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2014년 3월 31일 원고 또는 피고를 피공탁자로 하여 보험금 1,430,390,619원을 변제공탁하였다.

법리

보험계약에는 영국법이 적용됨
이 사건 선박은 캄보디아에 등록되어 있었고, 선박소유자인 피고는 파나마 법인이었다. 따라서 보험계약에는 외국적 요소가 존재하였다.
판결 당시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은 계약에 적용할 법을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사건에 적용되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은 그 첫머리에서 “이 보험은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른다”고 정하였다.
따라서 누가 보험계약상 피보험자인지, 보험증권에 기재되지 않은 원고도 보험금청구권자가 될 수 있는지는 한국 상법이 아니라 영국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영국법상 현명되지 않은 본인
대리인이 본인을 위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본인의 구체적인 신원은 밝히지 않았지만 본인의 존재 자체는 상대방에게 알린 경우가 있다.
보험자가 대리인 뒤에 별도의 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 본인은 ‘현명되지 않은 본인(unnamed or unidentified principal)’으로서 보험계약상 권리와 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다음 요건이 필요하다.
  • 계약 체결자에게 본인의 보험계약 체결 대리권이 있을 것
  • 계약 체결자가 본인을 위하여 계약을 체결할 의사를 가질 것
  • 보험자가 본인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
영국법상 노출되지 않은 본인
보험자가 대리인 뒤에 다른 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본인이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를 ‘노출되지 않은 본인(undisclosed principal)’이라고 한다.
그 요건은 다음과 같다.
  • 대리인이 본인으로부터 보험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받았을 것
  • 대리인이 계약 당시 그 본인을 위하여 계약을 체결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
  • 보험계약의 내용상 노출되지 않은 본인이 계약당사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지 않을 것
따라서 단순히 다른 사람이 보험료를 부담했다거나 보험목적물에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원고는 현명되지 않은 본인도, 노출되지 않은 본인도 아님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선박관리자인 수승이었다.
그러나 수승이 현대해상에 원고를 대리하여 계약을 체결한다는 취지를 표시하거나, 현대해상이 수승 뒤에 원고가 본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었다.
나아가 수승이 원고에게서 보험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받았고, 계약 당시 원고를 위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보험증권에는 수승의 지위가 원고의 ‘대리인’이 아니라 선박의 ‘관리자’로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원고는 영국법상 현명되지 않은 본인이나 노출되지 않은 본인으로서 보험계약상 권리를 취득할 수 없었다.
보험료 부담만으로 피보험자가 되는 것은 아님
원고는 자신이 보험료를 부담했으므로 보험금도 자신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선체용선계약에서는 선체용선자가 선박보험료와 유지비를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사건 계약에도 보험료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원고가 부담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원고의 보험료 지급은 선체용선계약상 비용부담의 이행일 뿐, 원고를 보험계약상 피보험자로 만드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운항자라는 표시도 피보험자 지위를 의미하지 않음
보험증권에는 원고가 ‘운항자(operator)’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운항자는 선박을 실제 운항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표시일 뿐, 피보험자로 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험증권의 피보험자란에는 소유자인 피고와 관리자인 수승만 기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원고가 선박을 실질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보험금청구권자가 될 수 없다.
피보험자 변경은 의도적인 것이었음
직전 보험증권에는 원고가 소유자로서 피보험자란에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고 당시 보험증권에서는 실제 소유자인 피고로 변경되어 있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변경이 원고와 수승의 협의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는 보험증권상 피보험자를 피고로 특정하려는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따라서 사고 당시 보험증권의 문언과 달리 원고도 피보험자였다고 해석할 수 없었다.
보험금은 선박소유자인 피고에게 귀속됨
보험증권상 피보험자는 선박소유자인 피고와 관리자인 수승이었다. 원고는 피보험자가 아니었으므로 보험금에 대한 직접적인 청구권이 없었다.
따라서 현대해상이 공탁한 보험금 1,430,390,619원에 관한 공탁금출급청구권은 선박소유자인 피고에게 귀속되었다.
원고가 지급한 용선료는 반환되지 않음
원고는 보험금 전액이 피고에게 귀속된다면, 자신이 지급한 용선료 중 선박소유권 취득대가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계약은 용선기간 만료 후 소유권취득조건이 붙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선박을 사용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는 선박임대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원고가 지급한 50개월분의 용선료는 실제로 선박을 사용한 대가였다. 따라서 선박이 나중에 침몰하여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급한 용선료가 법률상 원인 없는 이익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박인도금은 장래 선박을 인도받아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한 대가에 해당하였다. 선박이 침몰하여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해진 이상, 피고는 그중 인정된 19,370,000엔 상당액을 원고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결론

보험증권에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사람도 영국법상 현명되지 않은 본인 또는 노출되지 않은 본인의 법리에 따라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보험계약 체결자가 그 사람으로부터 대리권을 부여받고 그 사람을 위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보험자도 본인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선박관리자인 수승이 선체용선자인 원고를 대리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었다. 보험증권도 피보험자를 ‘소유자 피고, 관리자 수승’으로 명확하게 특정하였다.
원고가 보험료를 부담하고 선박을 운항했으며 보험증권에 운항자로 기재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보험자가 될 수 없다. 이에 보험금 공탁금출급청구권은 보험증권상 피보험자인 선박소유자 피고에게 귀속되었다.
다만 피고는 선박 침몰로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원고가 소유권 취득을 위하여 지급한 선박인도금 19,370,000엔 상당액은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반면 원고가 지급한 용선료는 실제 선박 사용의 대가이므로 반환대상이 아니다.
이 글이 다룬 조문

목록으로 업무분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