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하증권의 준거법 분할과 지상약관에 따른 미국법상 책임제한

핵심 결론 선하증권 전체에는 영국법이 적용되더라도, 지상약관이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을 적용하도록 정했다면 그 부분에는 미국법이 우선 적용된다. 같은 운송사고를 불법행위로 청구해도 선하증권의 준거법과 책임제한을 피할 수 없다.
이 자료는 서권식 변호사가 실무를 처리하면서 참조한 판례를 바탕으로, 실무상 유의할 점에 주안점을 두고 법리적 쟁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의 판례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실려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공개되지 않은 하급심·환송심 판결은 판결문을 직접 확보하여 정리합니다.
주요 판례·법령 2014다41469, 2009다10249

해당 판례

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4다41469 판결 [구상금]
  • 원고: 수입화물에 관한 보험금을 지급하고 선하증권을 교부받은 디비손해보험 주식회사 외 6인
  • 원고보조참가인: 콜마 그룹 에이쥐(Kolmar Group AG)
  • 피고: 화물을 운송한 에이트젠 케미칼 싱가폴 피티이(Eitzen Chemical Singapore Pte.)
  • 쟁점: 영국법을 일반 준거법으로 정한 선하증권에서 지상약관이 책임제한에 관하여 지정한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을 별도의 준거법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 대법원 결과: 원고들과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
하급심
원심
부산고등법원 2014. 5. 22. 선고 2012나10751 판결 [구상금]
원심은 선하증권의 일반적·전체적 준거법은 영국법이지만,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해서는 선하증권의 지상약관에 따라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이 우선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라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라 책임액을 화물 톤당 500달러로 제한하였다.
다만 원심은 불법행위책임의 준거법을 불법행위지인 대한민국법으로 보았다. 대법원은 이 부분의 이유 설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지만, 원심도 불법행위청구에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상 책임제한을 적용하여 계약책임과 같은 금액을 인정하였으므로 결론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99. 12. 10. 선고 98다9038 판결 [손해배상(기)]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한 외국법이 대한민국의 강행규정과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고, 외국법의 적용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10249 판결 [손해배상(기)] 당사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약관계가 불법행위로 침해된 경우에는 불법행위지법보다 그 계약관계의 준거법이 불법행위책임에도 우선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령

이 사건에는 현행 국제사법이 아니라 다음 구법이 적용된다.
구 국제사법 제25조
구 국제사법(2022. 1. 4. 법률 제18670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25조
현행 국제사법 제45조에 해당한다.
  • 제1항: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
  • 제2항: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당사자는 계약 전체에 하나의 법만을 지정할 필요가 없고, 계약의 일부 또는 특정 쟁점에 관하여 다른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
구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
구 국제사법(2022. 1. 4. 법률 제18670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32조 제1항
현행 국제사법 제52조 제1항에 해당한다.
불법행위는 원칙적으로 그 행위가 행하여진 곳의 법에 의한다.
구 국제사법 제32조 제3항
구 국제사법(2022. 1. 4. 법률 제18670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32조 제3항
현행 국제사법 제52조 제3항에 해당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법률관계가 불법행위로 침해된 경우에는 불법행위지법이 아니라 그 기존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의한다.

사실관계

국내 수입회사는 외국법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미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액체화물을 수입하였다. 화물의 선적항은 미국 프리포트항이었다.
외국 운송인인 피고는 화물을 인도받아 대한민국으로 해상 운송하였다. 그런데 화물이 운송되는 과정에서 당초 계약된 사양에서 벗어나 상품성이 없을 정도로 훼손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원고 보험회사들은 수입회사와 체결한 해상적하보험계약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 뒤, 수입회사가 소지하던 선하증권을 교부받아 운송인인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 사건 선하증권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준거법 조항이 있었다.
첫째, 선하증권 전문은 해상운송계약의 일반적인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정한 항해용선계약의 내용을 선하증권에 편입하고 있었다.
둘째, 선하증권 후문에는 운송인의 책임범위를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르도록 하는 지상약관이 있었다.
원고들은 선하증권의 일반 준거법이 영국법이므로 영국법상 책임제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피고는 지상약관이 책임제한에 관하여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을 별도의 준거법으로 지정한 것이므로, 책임액이 미국법에 따라 톤당 500달러로 제한된다고 주장하였다.

법리

국제계약의 준거법은 부분별로 나누어 지정할 수 있다
구 국제사법 제25조는 국제계약에서 당사자자치의 원칙을 인정하고, 특히 제2항은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해서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하나의 계약에 반드시 하나의 국가법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는 계약책임의 성립, 손해의 범위, 책임제한 등 서로 다른 법률문제마다 다른 국가의 법을 적용하도록 정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준거법이 다음과 같이 분할되었다.
  • 선하증권 및 해상운송계약의 일반적·전체적 준거법: 영국법
  •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한 준거법: 미국 해상화물운송법
따라서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는 영국법으로 판단하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배상액의 한도는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라 정할 수 있다.
지상약관의 성격은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
지상약관(Clause Paramount)이란 선하증권의 일반 준거법과 별도로 운송인의 책임범위 등 특정 사항에 국제협약 또는 이를 입법화한 특정 국가의 법을 우선 적용하도록 정한 조항이다.
지상약관의 법적 성격은 다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 외국법의 내용을 계약조항으로 받아들인 실질법적 지정
  • 특정 쟁점에 적용할 준거법 자체를 외국법으로 정한 저촉법적 지정
실질법적 지정이라면 계약에 편입된 외국법 내용은 계약의 일반 준거법상 강행규정을 위반할 수 없다. 반면 저촉법적 지정이라면 해당 쟁점에는 별도로 선택된 외국법이 준거법으로 직접 적용되므로 일반 준거법의 규정보다 우선할 수 있다.
어느 경우인지는 지상약관의 문언, 일반 준거법 조항과의 관계, 계약체결 경위 및 국제해상운송의 거래관행 등을 종합하여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함으로써 판단한다.
책임제한에 특정 국가법을 명시했다면 준거법의 부분지정으로 볼 수 있다
선하증권이 일반 준거법을 정하면서도 운송인의 책임범위에 관하여 별도로 특정 국가의 법을 적용하도록 명시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특정 국가법을 책임제한의 준거법으로 우선 적용하려는 의사로 해석해야 한다.
이 사건 선하증권 후문은 운송인의 책임범위를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르도록 명시하였다. 또한 화물의 선적항이 미국 프리포트항이었으므로,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이 정한 국제해상운송에 대한 적용요건도 충족하였다.
따라서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해서는 일반 준거법인 영국법보다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이 우선 적용된다.
책임 발생에는 영국법, 책임 한도에는 미국법이 적용된다
화물은 송하인으로부터 운송인에게 하자 없이 인도되었지만, 운송인의 해상운송 과정에서 사양을 이탈하여 상품성을 상실하였다.
이에 따라 선하증권의 일반적 준거법인 영국 해상화물운송법상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
다만 그 책임액은 지상약관이 별도로 지정한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라 화물 톤당 500달러로 제한되었다.
이는 동일한 법률관계에 영국법과 미국법을 무차별적으로 중복 적용한 것이 아니라, 각 법이 규율하는 사항을 나누어 적용한 것이다.
불법행위청구로 미국법상 책임제한을 피할 수 없다
원고들은 선하증권에 따른 계약책임과 함께 운송인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도 청구하였다.
불법행위에는 원칙적으로 구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에 따라 불법행위지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당사자 사이에 이미 선하증권에 따른 운송계약 관계가 존재하고 그 법률관계가 불법행위로 침해된 경우에는 구 국제사법 제32조 제3항이 우선 적용된다.
따라서 불법행위청구에도 선하증권의 준거법 구조가 그대로 적용된다.
  • 불법행위책임의 성립과 일반적 법률관계: 영국법
  • 불법행위책임의 한도: 미국 해상화물운송법
원고가 동일한 운송사고를 채무불이행이 아니라 불법행위로 구성하더라도,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상 책임제한을 우회할 수 없다.
원심의 준거법 판단은 일부 잘못되었지만 결론은 정당하였다
원심은 불법행위책임의 준거법을 불법행위지인 대한민국법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 불법행위가 선하증권에 따른 기존 법률관계를 침해한 것이므로, 구 국제사법 제32조 제3항에 따라 선하증권의 준거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원심도 불법행위책임에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상 책임제한을 적용하여 계약책임과 같은 금액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준거법에 관한 이유 설시에는 잘못이 있었지만 판결 결과에는 영향이 없었다.

결론

이 사건에는 현행 국제사법이 아니라 구 국제사법(2022. 1. 4. 법률 제18670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25조와 제32조가 적용된다.
구 국제사법 제25조가 계약 일부에 대한 준거법 선택을 허용하므로, 선하증권 전체의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하면서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해서만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을 적용하는 준거법의 분할이 인정된다.
이에 따라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 성립 여부에는 영국법이 적용되었지만, 책임액은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라 화물 톤당 500달러로 제한되었다.
또한 같은 운송사고를 불법행위로 청구하더라도 구 국제사법 제32조 제3항의 종속적 연결에 따라 선하증권의 준거법과 미국법상 책임제한이 그대로 적용된다. 대법원은 이러한 결론을 유지하여 원고들과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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